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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결과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왜군사력을 잃고도 카르타고가 상업으로 되살아나자 로마 원로원이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봤다. 카토는 연설마다 카르타고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결과도시가 파괴되고 지도에서 지워졌다.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가 된다.
54년을 다스리며 흉노를 밀어내고 서역으로 길을 열었다. 유교를 국가의 학문으로 세운 것도 그다.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서역으로 떠났다가 10년을 포로로 지냈다. 탈출해 임무를 마치고 13년 만에 돌아왔다.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전쟁 · BC 149 · 이미 이긴 상대를 지운 3년
군사력을 잃고도 카르타고가 상업으로 되살아나자 로마 원로원이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봤다. 카토는 연설마다 카르타고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도시가 파괴되고 지도에서 지워졌다.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가 된다.
【그때 그 자리】 BC 149년이다. 카르타고는 이미 위험하지 않았다.
2차 전쟁에서 진 뒤 함대를 넘겼고, 배상금을 물었으며, 로마의 허락 없이 전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무역으로 다시 부유해졌다. 50년 배상금을 앞당겨 다 갚겠다고 했을 정도다.
【왜 그렇게 됐나】 그 회복이 로마를 자극했다.
대(大)카토가 사절로 갔다가 도시의 번영을 보고 돌아와, 원로원 연설을 무슨 주제로 하든 이 말로 끝냈다고 전한다.
「그리고 나는 카르타고가 파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품에서 잘 익은 무화과를 꺼내 보이며, 이것이 사흘 전 카르타고에서 딴 것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다.
반대도 있었다. 스키피오 나시카는 두려워할 상대가 있어야 로마가 기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어떻게 흘렀나】 구실이 필요했다.
이웃 누미디아의 마시니사가 카르타고 영토를 계속 침범했다. 로마에 호소해도 늘 누미디아 편이었다.
참다못한 카르타고가 군대를 냈다. 「허락 없이 전쟁했다」는 조약 위반이 됐다.
로마의 요구가 단계적으로 올라갔다.
귀족 자제 300명을 인질로 내라 — 냈다. 무기를 전부 넘겨라 — 갑옷 20만 벌과 투석기 2천 대를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요구가 왔다. 도시를 버리고 바다에서 15km 떨어진 내륙으로 옮겨 살라는 것이다.
항구 도시에게 바다를 버리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었다.
카르타고가 거부했다. 무기가 없어서 신전의 장식을 녹였다.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투석기 줄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3년을 버텼다.
【그래서】 BC 146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함락시켰다.
시가전이 엿새 갔다. 집집마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싸웠다.
17일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5만 명이 노예로 팔렸다.
폴리비오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 스키피오가 불타는 도시를 보며 「일리아스」의 구절을 읊었다고 적었다.
「언젠가 성스러운 트로이도 멸망하리라.」
왜 그러느냐 묻자, 언젠가 로마에도 같은 날이 오리라 답했다.
【남은 것】 땅에 소금을 뿌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고대 사료에는 없다.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카르타고 사람들이 남긴 글이 거의 없다. 우리가 아는 카르타고는 그들을 없앤 쪽이 쓴 것이다.
같은 해에 로마가 코린토스도 지웠다. 지중해에 대적할 상대가 사라졌다.
그리고 13년 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과 유혈 진압이 시작된다. 밖의 적이 사라지자 안의 갈등이 터졌다.
100년 뒤 카이사르가 같은 자리에 로마 식민시를 세웠다. 지금 튀니지의 수도 교외에 유적이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 킴브리 전쟁 고조선-한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