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브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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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공화정의 위기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킴브리 전쟁BC 113 – BC 101
로마 vs 킴브리·테우토네스

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아라우시오 BC 105아콰이 섹스티아이 BC 102베르켈라이 BC 101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12년 · 로마 군제의 전환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그라쿠스 형제정치BC 133 · 땅을 나누려다 맞아 죽었다
BC 168 – BC 121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 농지법 — 토지 소유 상한을 두려 함
  • 호민관 권한으로 원로원과 충돌
  • 둘 다 정치 폭력에 죽음 — 공화정 몰락의 신호
사마천사상BC 91 · 치욕을 견디고 역사를 쓴 사람
BC 145 – BC 86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 「사기」 130권 — 3,000년을 다룬 통사
  • 기전체 — 이후 2,000년 동아시아 역사서의 형식
  • 「인간은 한 번 죽는데,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
장건정치BC 138 · 길을 연 사람
BC 164 – BC 114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서역으로 떠났다가 10년을 포로로 지냈다. 탈출해 임무를 마치고 13년 만에 돌아왔다.

  • 13년 만의 귀환 — 서역 36국을 보고
  • 실크로드의 실질적 개척
  • 포도·석류·목숙이 중국에 들어옴

그 무렵의 사건

BC 100
옥저와 동예
고조선이 무너진 뒤 함경도·강원도 북부 동해안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라는 작은 나라들이 자리 잡았다. 둘 다 왕이 없이 각 읍락을 우두머리(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는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해 고구려에 공물로 바쳤고, 신랑이 어릴 신부를 미리 데려가 키운 뒤 성인이 되면 정식 혼인하는 민며느리제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동예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가축으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라는 제도와, 매년 10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무천이라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훗날 고구려에 흡수됐다.
BC 100
삼한(마한·진한·변한)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가 자리했다. 이들을 통틀어 삼한이라 부르며, 훗날 각각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해 나갔다.
삼한은 각 소국마다 정치를 맡는 우두머리(신지·읍차 등)와,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따로 있는 제정 분리 사회였다.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는 죄인이 도망쳐 들어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 변한 지역은 철이 풍부해 낙랑·왜 등에 수출했으며, 이 철 생산 기반은 훗날 가야 연맹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BC 138
장건의 서역행
한 사람이 길을 열어 실크로드가 됐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장건을 보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동맹은 못 구했지만 서역의 나라들을 보고했고, 그 정보가 실크로드 교역의 시작이 됐다.
BC 146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같은 해에 두 도시가 지워졌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몇 달 뒤 코린토스도 파괴했다. 지중해 서쪽과 동쪽의 마지막 경쟁자가 함께 사라진 해로, 로마의 지중해 지배가 여기서 확정된다.
BC 44
카이사르 암살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공화정 회복 대신 제국이 왔다.
공화정 회복을 노린 암살이 오히려 제정을 앞당겼다.

교역로 2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킴브리 전쟁

전쟁 · BC 113 · 로마가 군대를 다시 만든 이유

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그때 그 자리】 BC 113년이다. 북쪽에서 낯선 무리가 내려왔다.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족이다. 지금의 덴마크 유틀란트 쪽에서 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군대가 아니었다. 여자와 아이와 짐수레를 끌고 오는 이주 집단이었다. 수십만 명으로 추정한다.

땅을 달라고 했다. 로마가 거절했다.

【왜 그렇게 됐나】 로마가 이들을 얕봤다.

그리고 다섯 번 크게 졌다.

노레이아·부르디갈라·아라우시오에서 차례로 군단이 무너졌다.

BC 105년 아라우시오가 최악이었다. 로마군 8만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칸나에 이후 최대 참사다.

지휘관 둘이 사이가 나빠 따로 진을 쳤고, 하나가 무너지자 다른 하나도 무너졌다.

패인이 뚜렷했다. 집정관이 해마다 바뀌어 지휘가 이어지지 않았고, 귀족 출신 지휘관이 군사 경험 없이 임명됐으며, 재산이 있는 시민만 병사로 받아 병력이 모자랐다.

이탈리아가 공황에 빠졌다. 「킴브리의 공포」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어떻게 흘렀나】 마리우스가 나섰다.

법을 어기고 연속으로 집정관에 뽑혔다. 5년 연임했다.

그리고 군을 뜯어고쳤다.

재산 자격을 없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지원하면 병사가 됐고, 장비는 국가가 댔다.

복무 기간을 16년으로 정하고, 제대할 때 땅을 주기로 했다.

병사가 짐을 스스로 지게 했다. 짐수레를 줄여 행군 속도를 높인 것이다 — 「마리우스의 노새」라 불렸다.

군단의 기본 단위를 코호트로 바꾸고, 독수리 군기를 각 군단의 상징으로 통일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킴브리와 테우토네스가 갈라져 각각 다른 길로 이탈리아로 들어오려 하자, 하나씩 상대했다.

BC 102년 아쿠아이 섹스티아이에서 테우토네스를, BC 101년 베르켈라이에서 킴브리를 궤멸시켰다.

【그래서】 로마가 살아남았다. 마리우스는 「제3의 건국자」라 불렸다.

그런데 그가 만든 군대가 나중에 문제가 됐다.

가진 것 없는 병사에게 제대 후의 땅이 전부였다. 그것을 얻어 주는 사람이 원로원이 아니라 지휘관이었다.

병사가 나라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됐다.

【남은 것】 13년 뒤 술라가 그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한다. 마리우스와 술라가 서로를 죽이는 내전이 이어진다.

40년 뒤 카이사르가 같은 일을 한다.

로마를 구한 개혁이 공화정을 무너뜨리는 장치가 됐다. 이 역설이 로마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고조선-한 전쟁 제3차 포에니 전쟁 스파르타쿠스의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