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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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2건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BC 181 – BC 133
로마 vs 이베리아 부족

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비리아투스의 저항 BC 147누만티아 공성 BC 134

결과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48년 · 로마의 첫 장기 소모전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BC 171 – BC 168
로마 vs 마케도니아

페르세우스 왕이 그리스 도시들과 손잡고 로마의 영향력을 밀어내려 했다.

피드나 BC 168

결과피드나에서 팔랑크스가 지형이 흐트러진 틈에 로마 군단에 부서졌다.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이 끝나고 로마가 동지중해의 주인이 됐다.

3년 · 밀집 창병 시대의 종말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194
위만조선 성립
연나라 출신 위만이 고조선 준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BC 146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같은 해에 두 도시가 지워졌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몇 달 뒤 코린토스도 파괴했다. 지중해 서쪽과 동쪽의 마지막 경쟁자가 함께 사라진 해로, 로마의 지중해 지배가 여기서 확정된다.
BC 138
장건의 서역행
한 사람이 길을 열어 실크로드가 됐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장건을 보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동맹은 못 구했지만 서역의 나라들을 보고했고, 그 정보가 실크로드 교역의 시작이 됐다.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BC 221
진의 중국 통일
시황제가 처음으로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군현제와 문자 통일이 이후 2천 년 중국의 틀이 됐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전쟁 · BC 171 · 그리스가 로마의 것이 된 날

페르세우스 왕이 그리스 도시들과 손잡고 로마의 영향력을 밀어내려 했다. 피드나에서 팔랑크스가 지형이 흐트러진 틈에 로마 군단에 부서졌다.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이 끝나고 로마가 동지중해의 주인이 됐다.

【그때 그 자리】 BC 2세기 초다. 로마가 이미 두 차례 마케도니아와 싸워 이겼다.

필리포스 5세가 한니발과 손잡았던 것이 시작이었다.

2차 전쟁 뒤 로마가 「그리스의 자유」를 선포했다. BC 196년 코린토스의 경기장에서 전령이 그것을 읽자 사람들이 환호했다는 기록이 있다.

군대를 빼고 돌아갔다. 그때까지는 정말로 물러났다.

【왜 그렇게 됐나】 필리포스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즉위했다.

그가 마케도니아를 다시 세우려 했다. 빚을 탕감하고 망명자를 불러들이고 그리스 도시들과 관계를 넓혔다.

무엇을 잘못했다기보다, 힘을 되찾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왕이 로마에 가서 그를 고발했다. 로마가 선전포고했다.

【어떻게 흘렀나】 초반 3년은 로마가 헤맸다. 지휘관들이 무능했고 그리스에서 평판만 나빠졌다.

BC 168년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지휘를 맡았다.

6월 22일 피드나다. 마케도니아 방진이 밀고 나왔다. 로마 병사들이 그 창벽을 뚫지 못했다.

파울루스가 뒤에 말했다고 전한다. 「내 평생 그렇게 무섭고 끔찍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방진이 고르지 않은 땅을 지나며 틈이 벌어졌다.

로마 병사들이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짧은 검을 든 개인 전투가 되자 긴 창은 쓸모가 없었다.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마케도니아군 2만이 죽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 왕국이 사라졌다. 알렉산드로스의 나라가 끝났다.

페르세우스는 로마로 끌려가 개선식 행렬에 세워졌다.

로마의 태도가 이때부터 달라졌다.

마케도니아를 넷으로 쪼개 서로 교류하지 못하게 했다. 중립을 지켰던 로도스를 응징하려 델로스를 자유항으로 만들어 그 무역을 죽였다.

친(親)마케도니아 혐의로 아카이아 동맹에서 인질 1,000명을 잡아갔다. 그 가운데 폴리비오스가 있었다.

그가 로마에 17년 머물며 「로마가 어떻게 53년 만에 세계를 지배했는가」를 썼다.

【남은 것】 22년 뒤 BC 146년 아카이아 동맹이 무모하게 저항하자, 로마가 코린토스를 지웠다. 그리스가 속주가 됐다.

이 전쟁이 분기점으로 자주 꼽힌다. 로마가 「이기고 물러나는 나라」에서 「이기고 남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리스에서 실려 온 전리품이 로마를 바꾸기도 했다. 조각과 책과 교사가 들어왔다.

호라티우스가 뒤에 적었다. 「정복당한 그리스가 사나운 승자를 정복했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 제3차 포에니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