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포에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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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2건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BC 181 – BC 133
로마 vs 이베리아 부족

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비리아투스의 저항 BC 147누만티아 공성 BC 134

결과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48년 · 로마의 첫 장기 소모전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 – BC 146
로마 vs 카르타고

군사력을 잃고도 카르타고가 상업으로 되살아나자 로마 원로원이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봤다. 카토는 연설마다 카르타고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카르타고 포위 BC 149–146

결과도시가 파괴되고 지도에서 지워졌다.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가 된다.

3년 · 도시가 헐리고 주민 대부분이 노예가 됐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한 무제정치BC 141 · 한을 제국으로 만든 황제
BC 156 – BC 87

54년을 다스리며 흉노를 밀어내고 서역으로 길을 열었다. 유교를 국가의 학문으로 세운 것도 그다.

  • 흉노 원정과 하서 4군 설치
  • 장건을 서역에 보내 실크로드를 엶
  • 유교를 관학으로 — 이후 2,000년의 틀
장건정치BC 138 · 길을 연 사람
BC 164 – BC 114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서역으로 떠났다가 10년을 포로로 지냈다. 탈출해 임무를 마치고 13년 만에 돌아왔다.

  • 13년 만의 귀환 — 서역 36국을 보고
  • 실크로드의 실질적 개척
  • 포도·석류·목숙이 중국에 들어옴
그라쿠스 형제정치BC 133 · 땅을 나누려다 맞아 죽었다
BC 168 – BC 121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 농지법 — 토지 소유 상한을 두려 함
  • 호민관 권한으로 원로원과 충돌
  • 둘 다 정치 폭력에 죽음 — 공화정 몰락의 신호

그 무렵의 사건

BC 146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같은 해에 두 도시가 지워졌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몇 달 뒤 코린토스도 파괴했다. 지중해 서쪽과 동쪽의 마지막 경쟁자가 함께 사라진 해로, 로마의 지중해 지배가 여기서 확정된다.
BC 138
장건의 서역행
한 사람이 길을 열어 실크로드가 됐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장건을 보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동맹은 못 구했지만 서역의 나라들을 보고했고, 그 정보가 실크로드 교역의 시작이 됐다.
BC 194
위만조선 성립
연나라 출신 위만이 고조선 준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BC 100
옥저와 동예
고조선이 무너진 뒤 함경도·강원도 북부 동해안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라는 작은 나라들이 자리 잡았다. 둘 다 왕이 없이 각 읍락을 우두머리(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는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해 고구려에 공물로 바쳤고, 신랑이 어릴 신부를 미리 데려가 키운 뒤 성인이 되면 정식 혼인하는 민며느리제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동예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가축으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라는 제도와, 매년 10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무천이라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훗날 고구려에 흡수됐다.
BC 100
삼한(마한·진한·변한)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가 자리했다. 이들을 통틀어 삼한이라 부르며, 훗날 각각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해 나갔다.
삼한은 각 소국마다 정치를 맡는 우두머리(신지·읍차 등)와,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따로 있는 제정 분리 사회였다.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는 죄인이 도망쳐 들어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 변한 지역은 철이 풍부해 낙랑·왜 등에 수출했으며, 이 철 생산 기반은 훗날 가야 연맹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제3차 포에니 전쟁

전쟁 · BC 149 · 이미 이긴 상대를 지운 3년

군사력을 잃고도 카르타고가 상업으로 되살아나자 로마 원로원이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봤다. 카토는 연설마다 카르타고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도시가 파괴되고 지도에서 지워졌다.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가 된다.

【그때 그 자리】 BC 149년이다. 카르타고는 이미 위험하지 않았다.

2차 전쟁에서 진 뒤 함대를 넘겼고, 배상금을 물었으며, 로마의 허락 없이 전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무역으로 다시 부유해졌다. 50년 배상금을 앞당겨 다 갚겠다고 했을 정도다.

【왜 그렇게 됐나】 그 회복이 로마를 자극했다.

대(大)카토가 사절로 갔다가 도시의 번영을 보고 돌아와, 원로원 연설을 무슨 주제로 하든 이 말로 끝냈다고 전한다.

「그리고 나는 카르타고가 파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품에서 잘 익은 무화과를 꺼내 보이며, 이것이 사흘 전 카르타고에서 딴 것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다.

반대도 있었다. 스키피오 나시카는 두려워할 상대가 있어야 로마가 기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어떻게 흘렀나】 구실이 필요했다.

이웃 누미디아의 마시니사가 카르타고 영토를 계속 침범했다. 로마에 호소해도 늘 누미디아 편이었다.

참다못한 카르타고가 군대를 냈다. 「허락 없이 전쟁했다」는 조약 위반이 됐다.

로마의 요구가 단계적으로 올라갔다.

귀족 자제 300명을 인질로 내라 — 냈다. 무기를 전부 넘겨라 — 갑옷 20만 벌과 투석기 2천 대를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요구가 왔다. 도시를 버리고 바다에서 15km 떨어진 내륙으로 옮겨 살라는 것이다.

항구 도시에게 바다를 버리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었다.

카르타고가 거부했다. 무기가 없어서 신전의 장식을 녹였다.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투석기 줄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3년을 버텼다.

【그래서】 BC 146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함락시켰다.

시가전이 엿새 갔다. 집집마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싸웠다.

17일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5만 명이 노예로 팔렸다.

폴리비오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 스키피오가 불타는 도시를 보며 「일리아스」의 구절을 읊었다고 적었다.

「언젠가 성스러운 트로이도 멸망하리라.」

왜 그러느냐 묻자, 언젠가 로마에도 같은 날이 오리라 답했다.

【남은 것】 땅에 소금을 뿌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고대 사료에는 없다.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카르타고 사람들이 남긴 글이 거의 없다. 우리가 아는 카르타고는 그들을 없앤 쪽이 쓴 것이다.

같은 해에 로마가 코린토스도 지웠다. 지중해에 대적할 상대가 사라졌다.

그리고 13년 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과 유혈 진압이 시작된다. 밖의 적이 사라지자 안의 갈등이 터졌다.

100년 뒤 카이사르가 같은 자리에 로마 식민시를 세웠다. 지금 튀니지의 수도 교외에 유적이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 킴브리 전쟁 고조선-한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