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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하드리아누스가 예루살렘 자리에 로마식 도시를 세우고 유피테르 신전을 지으려 했다.
결과3년을 버텼으나 진압됐다. 로마는 유대라는 이름을 지우고 시리아 팔라이스티나로 바꿨으며,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을 금했다. 1,800년의 이산이 여기서 굳는다.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최초의 지진계를 만들다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1400년을 지배한 우주 모형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130 · 부처의 얼굴이 생긴 자리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그때 그 자리】 2세기 쿠샨 제국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월지(月氏)의 갈래가 세운 나라로,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인도 갠지스 중류까지 걸쳤다.
위치가 전부였다. 실크로드의 한복판이다. 로마의 금화가 들어와 인도의 향료와 바뀌고, 중국의 비단이 지나갔다.
【왜 그렇게 됐나】 그가 불교를 보호했다. 제4차 결집을 열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더 큰 일은 미술 쪽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 불교 미술에 부처의 몸은 없었다. 발자국, 빈 자리, 보리수, 법륜으로 표시했다 — 깨달은 이를 사람 꼴로 그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쿠샨 시대에 그 원칙이 깨졌다. 간다라에서 부처가 사람 얼굴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흘렀나】 그 얼굴이 그리스식이다. 물결치는 머리카락, 오뚝한 코, 몸에 붙어 주름지는 옷 — 아폴론 조각의 문법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남기고 간 그리스계 장인들의 전통이 400년 뒤 불상으로 나온 것이다.
같은 시기 마투라에서는 인도 고유 양식의 불상이 따로 나왔다. 어느 쪽이 먼저인가는 지금도 논쟁이다.
카니슈카가 찍은 금화가 남아 있다. 앞면에 자기 모습, 뒷면에 신들이 있다 — 그리스의 헬리오스, 이란의 미트라, 인도의 시바, 그리고 「보도(BODDO)」라 적힌 부처가 있다.
한 사람의 화폐에 네 문명의 신이 함께 있다.
【그래서】 그의 후원으로 대승불교가 자리를 잡았다. 부처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모두의 구원을 말하는 흐름이다.
그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타고 동쪽으로 갔다. 서역을 지나 중국으로, 4세기에 고구려로, 다시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남은 것】 한국의 절에 있는 불상의 옷 주름을 따라가면 간다라가 나오고, 그 앞에 그리스가 있다.
즉위 연도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 78년설과 127년설이 오래 겨뤘고 지금은 127년 쪽이 유력하다.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시대에 만들어진 얼굴을 우리는 매일 본다.
2001년 탈레반이 바미얀 석불을 폭파했다. 그 계보의 끝자락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장형 하드리아누스 트라야누스 프톨레마이오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