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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해당 없음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최초의 지진계를 만들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110 · 로마가 가장 넓었던 때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그때 그 자리】 98년 즉위했다. 에스파냐 출신으로, 이탈리아 밖에서 난 첫 황제다.
그전 도미티아누스의 공포정치가 끝난 뒤였다. 원로원이 그를 「최고의 원수(옵티무스 프린켑스)」라 불렀다.
【왜 그렇게 됐나】 다키아를 두 차례 쳤다(101~102, 105~106). 지금의 루마니아다.
금광이 있었다. 그 금으로 로마에서 123일간 축제를 열었고 검투사 1만 명이 나왔다고 전한다.
그 전쟁을 기록한 것이 트라야누스 원주다. 높이 38m 기둥에 2,662명의 인물이 나선으로 새겨져 있다. 로마군이 다리를 놓고 진지를 세우고 부상자를 옮기는 장면까지 담겨 있어 로마 군사사의 일급 자료다.
【어떻게 흘렀나】 113년 파르티아를 쳐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얻었다. 페르시아만까지 갔다.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다. 「알렉산드로스가 부럽다」며 인도까지 가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안에서는 알리멘타를 시행했다. 지주에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로 가난한 아이들을 먹이는 제도다. 국가가 아동 복지를 한 이른 예다.
속주 총독 플리니우스와 주고받은 편지가 남아 있다. 기독교인을 어떻게 다룰지 묻자 「일부러 찾아내지 말고, 익명의 고발은 받지 말라」고 답했다.
【그래서】 117년 원정에서 돌아오다 죽었다. 후계자 하드리아누스는 곧바로 메소포타미아를 포기했다 — 지키는 비용이 얻는 것보다 컸다.
【남은 것】 이후 황제들은 즉위할 때 「아우구스투스보다 운이 좋고 트라야누스보다 훌륭하기를」이라는 인사를 받았다.
5현제의 하나로 꼽힌다. 그 시대를 기번은 「인류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 했는데, 노예와 속주민에게도 그랬는지는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