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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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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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마르코만니 전쟁166 – 180
로마 vs 게르만·사르마티아 부족

동방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긴 역병으로 국경 수비가 얇아지자, 다뉴브 너머 부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카르눈툼 방어 171다뉴브 도하 174

결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전선 막사에서 「명상록」을 썼다. 이 전쟁 이후 게르만족의 압력은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14년 · 게르만 압력의 시작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사상170 · 막사에서 일기를 쓴 황제
AD 121 – AD 180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 「명상록」 — 남에게 보이려 쓴 글이 아니다
  • 마르코만니 전쟁을 직접 지휘
  • 오현제의 마지막 —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 실책
프톨레마이오스과학150 · 천문학자·지리학자
AD 100 무렵 – AD 170 무렵

1400년을 지배한 우주 모형

  • 알마게스트 저술
  • 주전원으로 행성 역행을 설명
  •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의 정설

그 무렵의 사건

165
안토니누스 역병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212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안 모든 자유민이 로마 시민이 됐다.
카라칼라가 속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줬다. 명분은 평등, 실제는 세수 — 시민만 내는 상속세를 걷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로마인」의 뜻이 혈통에서 소속으로 바뀐 사건이다.
220
삼국의 성립
한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105
채륜과 종이의 발명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어망 등을 이용한 종이 제조법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인물 · 170 · 막사에서 일기를 쓴 황제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그때 그 자리】

2세기 로마는 팍스 로마나의 절정에 있었다. 지중해 전역이 하나의 체제 아래 있고 큰 전쟁이 없었다.

이 시기 다섯 황제가 잇달아 잘 다스려 오현제라 불린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공통점이 있다. 앞의 넷은 아들이 없어 유능한 사람을 양자로 삼아 물려줬다.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후계를 정한 것이다. 이것이 이 시기 안정의 이유로 자주 꼽힌다.

【왜 그렇게 됐나】

마르쿠스는 어려서부터 철학에 끌렸다. 스토아 철학이다.

스토아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쓰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판단과 태도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이성을 나눠 가진 존재이므로 서로에게 의무가 있다.

그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아버지 안토니누스가 죽자 자리를 맡았다.

161년 즉위하면서 그는 양동생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로마 역사상 처음이다.

【어떻게 흘렀나】

그의 치세는 평온하지 않았다.

동쪽에서 파르티아와 전쟁이 있었다. 그 군대가 돌아오면서 역병을 가져왔다. 안토니누스 역병이다. 15년 넘게 이어져 제국 인구의 상당 부분이 죽었다. 천연두로 추정된다.

북쪽 국경에서 게르만 부족이 밀려왔다. 마르코만니 전쟁이 그의 치세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다뉴브강 전선의 막사에서 지냈다.

철학을 좋아한 사람이 평생 전쟁터에 있었다.

그가 밤에 막사에서 그리스어로 쓴 글이 남았다. 남에게 보이려 쓴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하는 말이었다. 제목도 자기 자신에게라는 뜻이다. 우리는 명상록이라 부른다.

첫 권은 자기가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는지를 적은 감사의 목록이다. 그 뒤로는 계속 자기를 다잡는 말이 이어진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사람이 할 일을 하러 일어난다. 남이 잘못을 저지르면 화내지 말고 그가 무엇이 옳은지 몰랐다고 생각하라.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와 유럽도 한 귀퉁이이고 사람의 일생도 한순간이다.

180년 다뉴브 전선에서 죽었다.

【그래서】

그는 오현제의 원칙을 깼다. 친아들 콤모두스에게 물려줬다.

콤모두스는 검투사 흉내를 내며 놀았고 폭정을 폈으며 192년 암살됐다. 이후 로마는 내전과 군인 황제의 시대로 들어간다.

3세기의 위기가 여기서 시작된다는 서술이 많다. 가장 현명했던 황제의 마지막 결정이 그것이었다.

【남은 것】

명상록은 오래 잊혔다가 16세기에 인쇄됐다.

지금도 널리 읽힌다. 전쟁과 역병과 반란 속에서 하루하루 자기를 다잡던 사람의 기록이라는 점 때문이다. 무엇을 이루라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견디라는 말이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지 않았다. 그의 치세에 박해가 있었다. 명상록에도 기독교인의 순교를 고집으로 언급한 대목이 있다.

자기 아들에 대한 판단만은 끝내 흐렸다는 점이, 이 사람을 완전한 현자로 읽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오히려 이 기록을 사람의 글로 만든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조조 장형 카니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