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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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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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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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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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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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3세기의 위기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2건

황건적의 난184 – 205
후한 vs 태평도

역병과 흉작에 관리의 수탈이 겹쳤다. 태평도의 장각이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선다」며 수십만을 모았다.

광종 184완성 184

결과진압을 맡긴 지방관들이 그대로 군벌이 됐다. 조조·유비·손권이 모두 여기서 이름을 얻었고, 후한은 이 난에서 실질적으로 끝났다.

21년 · 삼국시대의 문
적벽대전208
조조 vs 손권·유비 연합

화북을 평정한 조조가 남쪽까지 삼키려 내려왔다. 손권과 유비가 살아남기 위해 손을 잡았다.

적벽 208이릉 222

결과화공으로 조조가 물러났다. 중국이 셋으로 갈라지는 형세가 굳어졌다.

조조군 수십만이 화공으로 하룻밤에 무너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조조장군208 · 난세를 정면으로 받은 사람
AD 155 – AD 220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꺾음 200
  • 둔전제 — 병사가 농사를 지어 자급
  • 적벽에서 패해 통일이 60년 미뤄짐
제갈량정치234 ·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 사람
AD 181 – AD 234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 천하삼분지계 — 형세를 셋으로 보다
  • 목우유마와 연노 등 병기 개량
  • 출사표 — 「죽은 뒤에야 그친다」

그 무렵의 사건

212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안 모든 자유민이 로마 시민이 됐다.
카라칼라가 속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줬다. 명분은 평등, 실제는 세수 — 시민만 내는 상속세를 걷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로마인」의 뜻이 혈통에서 소속으로 바뀐 사건이다.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220
삼국의 성립
한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165
안토니누스 역병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적벽대전

전쟁 · 208 · 세 나라로 갈린 하루

화북을 평정한 조조가 남쪽까지 삼키려 내려왔다. 손권과 유비가 살아남기 위해 손을 잡았다. 화공으로 조조가 물러났다. 중국이 셋으로 갈라지는 형세가 굳어졌다.

【그때 그 자리】 AD 208년이다. 후한이 이름만 남아 있었다.

조조가 북쪽을 통일했다. 황제를 옆에 끼고 「천자를 받들어 신하를 호령한다」는 방식으로 명분을 쥐었다.

형주를 무혈로 얻었다. 유표가 죽고 아들이 항복한 것이다.

남은 것은 강동의 손권과, 갈 곳 없이 밀려 내려온 유비였다.

【왜 그렇게 됐나】 조조가 손권에게 편지를 보냈다. 「수군 80만을 이끌고 장군과 강동에서 사냥을 하고자 한다.」

항복하라는 뜻이었다.

손권의 신하 대부분이 항복을 권했다. 주유와 노숙이 반대했다.

주유가 조조군의 약점을 짚었다. 북쪽 병사들이 배에 익숙하지 않고, 새로 항복한 형주 수군은 믿을 수 없으며, 물이 맞지 않아 병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병력은 80만이 아니라 20만 안팎으로 본다.

제갈량이 유비의 사신으로 가서 손권을 설득했다. 손권이 칼로 책상 모서리를 베며 결심을 밝혔다고 전한다.

【어떻게 흘렀나】 조조군이 뱃멀미와 질병에 시달렸다.

그래서 배들을 쇠고리로 묶어 흔들리지 않게 했다. 「연환계」라 부르는데, 실제로는 상대의 계략이 아니라 스스로 한 조치로 본다.

황개가 항복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보냈다.

마른 갈대와 기름을 실은 배 열 척을 몰고 갔다. 가까이 가서 불을 붙이고 작은 배로 옮겨 탔다.

동남풍이 불었다. 불배가 그대로 함대로 밀려 들어갔다.

묶여 있어 흩어지지 못했다. 불이 강가의 진영까지 옮겨붙었다.

조조가 화용도로 달아났다. 진창길에 병사들이 풀을 깔다 밟혀 죽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동남풍을 빌었다고 한다. 그해 그 계절에 동남풍이 부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것이 지금의 설명이다.

【그래서】 조조가 북쪽으로 돌아갔다. 다시는 남쪽을 통일하지 못했다.

유비가 형주 일부를 얻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익주(사천)로 들어가 촉을 세운다.

손권이 강동을 굳혀 오가 된다.

천하가 셋으로 갈렸다.

【남은 것】 실제 전투 규모는 「연의」가 그린 것보다 작았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정사 「삼국지」의 서술은 훨씬 짧다.

역병이 조조군을 무너뜨린 주된 원인이라는 기록도 있다. 조조 자신이 뒤에 「배를 스스로 태우고 물러났다」고 적었다.

그래도 결과는 분명하다. 통일이 72년 미뤄졌다.

적벽의 위치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후보지가 여럿이다.

소식이 그곳에서 「적벽부」를 썼는데, 그가 간 곳은 실제 전장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그 글이 이 전투를 문학으로 남겼다.

지도에서 보기: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3세기 로마-사산 전쟁 황건적의 난 3세기의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