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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파르티아를 무너뜨린 사산조가 옛 아케메네스 영토의 회복을 내걸었다. 로마의 동방 속주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결과에데사에서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로잡혔다. 로마는 처음으로 대등한 상대를 만났다.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야마타이국의 여왕으로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 칭호와 거울 100장을 받았다. 나라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규슈설과 기나이설로 갈린다.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230 · 로마 황제가 사로잡혔다
파르티아를 무너뜨린 사산조가 옛 아케메네스 영토의 회복을 내걸었다. 로마의 동방 속주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에데사에서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로잡혔다. 로마는 처음으로 대등한 상대를 만났다.
【그때 그 자리】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사산조를 세웠다.
그가 내건 것이 옛 아케메네스 제국의 회복이다.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가 다스리던 땅을 되찾겠다는 것인데, 그 안에 로마의 동방 속주가 들어 있었다.
파르티아는 느슨한 부족 연합이었다. 사산조는 중앙집권 국가였고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이념까지 갖췄다.
로마가 상대를 잘못 알아보았다.
【왜 그렇게 됐나】 하필 로마가 가장 약할 때였다. 3세기 위기다.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고, 대부분 살해됐다. 은화의 은 함량이 계속 떨어져 물가가 뛰었다. 게다가 역병이 돌았다.
【어떻게 흘렀나】 아르다시르의 아들 샤푸르 1세가 세 차례 크게 쳤다.
244년 미시케에서 고르디아누스 3세가 죽었다. 로마는 병사한 것이라 적었고, 샤푸르는 자기가 죽였다고 바위에 새겼다.
253년 안티오키아를 함락했다. 로마 동방의 가장 큰 도시다. 극장에서 공연 중에 사산군이 들이닥쳤다는 기록이 있다.
260년 에데사.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협상하러 나갔다가 사로잡혔다.
로마 황제가 적에게 산 채로 붙잡힌 유일한 사례다.
샤푸르가 말에 오를 때 그의 등을 밟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죽은 뒤 가죽을 벗겨 붉게 물들여 신전에 걸었다는 기록도 있다. 사산 쪽 선전이 섞였을 수 있다.
낙쉐로스탐의 바위에 그 장면이 새겨져 있다. 말 탄 샤푸르 앞에 로마 황제 둘이 있다 — 하나는 무릎 꿇고 하나는 손목이 잡혀 있다.
【그래서】 로마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팔미라의 오데나투스가 사산군을 밀어냈고, 그 뒤 아우렐리아누스가 제국을 다시 묶었다.
다만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분명하다. 로마는 처음으로 대등한 상대를 만났다.
그전까지 국경 밖은 「야만인」이었다. 이제 동쪽에 같은 급의 제국이 있었다.
【남은 것】 두 제국이 400년을 겨뤘다. 국경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소모전만 이어졌다.
그 끝이 7세기다. 마지막 전쟁으로 둘 다 탈진했을 때, 아라비아에서 나온 군대가 사산조를 없애고 동로마의 절반을 가져간다.
샤푸르가 잡아간 로마 포로들이 다리와 댐을 지었다. 슈시타르의 관개 시설이 지금도 남아 있고, 세계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