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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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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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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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3세기의 위기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2건

3세기 로마-사산 전쟁230 – 260
로마 vs 사산조 페르시아

파르티아를 무너뜨린 사산조가 옛 아케메네스 영토의 회복을 내걸었다. 로마의 동방 속주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에데사 260안티오키아 260

결과에데사에서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로잡혔다. 로마는 처음으로 대등한 상대를 만났다.

30년 넘게 · 로마 황제가 사로잡히는 초유의 일
3세기의 위기235 – 284
로마 vs 내부·페르시아·게르만

황제가 군대에 의해 세워지고 죽는 일이 반복됐다. 은화의 은 함량이 5%까지 떨어지며 물가가 폭등했다.

에데사 260 — 황제가 포로가 됨팔미라 수복 273

결과50년간 황제가 26명 바뀌고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로 겨우 봉합했지만 제국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49년 · 황제 26명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제갈량정치234 ·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 사람
AD 181 – AD 234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 천하삼분지계 — 형세를 셋으로 보다
  • 목우유마와 연노 등 병기 개량
  • 출사표 — 「죽은 뒤에야 그친다」
히미코정치239 · 위지동이전에 남은 여왕
170 무렵 – 248 무렵

야마타이국의 여왕으로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 칭호와 거울 100장을 받았다. 나라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규슈설과 기나이설로 갈린다.

  • 239년 위에 사신
  • 주술로 다스렸다고 기록됨
  • 야마타이 위치 논쟁은 아직 안 끝났다

그 무렵의 사건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220
삼국의 성립
한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212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안 모든 자유민이 로마 시민이 됐다.
카라칼라가 속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줬다. 명분은 평등, 실제는 세수 — 시민만 내는 상속세를 걷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로마인」의 뜻이 혈통에서 소속으로 바뀐 사건이다.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300
바누아투의 사람들
한 섬에 100개가 넘는 말이 있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300
야마토 정권
3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오늘날 나라·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의 여러 지역 세력을 통합하며 고대 일본 국가의 기틀을 놓았다.
이 시기 곳곳에 거대한 열쇠구멍 모양의 무덤('전방후원분')이 세워졌는데, 그 규모는 지배자의 권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백제·가야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유교·불교와 한자, 여러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6~7세기에는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진흥하고 중국식 관료제 요소를 도입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이후 다이카 개신(645년)을 거치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3세기의 위기

전쟁 · 235 · 50년 동안 황제 스물여섯

황제가 군대에 의해 세워지고 죽는 일이 반복됐다. 은화의 은 함량이 5%까지 떨어지며 물가가 폭등했다. 50년간 황제가 26명 바뀌고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로 겨우 봉합했지만 제국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 그 자리】 AD 235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자기 병사들에게 살해됐다.

그 뒤 50년 동안 황제로 인정받은 사람이 스물여섯이다. 자칭한 사람까지 세면 훨씬 많다.

대부분 살해됐다. 평균 재위 기간이 2년이 안 된다.

【왜 그렇게 됐나】 한꺼번에 여러 가지가 무너졌다.

첫째, 황제를 군대가 만들었다. 근위대나 국경 군단이 자기 사령관을 옹립하고, 마음에 안 들면 죽였다. 「황제 자리를 경매에 부친」 일까지 있었다.

둘째, 밖에서 눌렸다. 동쪽에서 사산조가 일어나 260년에는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았다. 북쪽에서 고트족이 국경을 넘어 그리스까지 약탈했다.

셋째, 돈이 무너졌다. 은화 데나리우스의 은 함량이 계속 떨어져 3세기 말에는 5% 이하가 됐다.

물가가 폭등했다. 사람들이 화폐를 믿지 않고 물물교환으로 돌아갔다.

넷째, 역병이 다시 돌았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이다. 로마에서 하루 5천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어떻게 흘렀나】 제국이 셋으로 갈렸다.

서쪽에서 갈리아 제국이 떨어져 나갔다. 갈리아·브리타니아·에스파냐가 14년간 따로 있었다.

동쪽에서는 팔미라의 제노비아가 시리아와 이집트와 소아시아를 차지했다. 상인 도시의 여왕이 로마의 절반을 쥔 것이다.

가운데만 로마 황제의 것이었다.

도시들이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로마시조차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쌓았다 — 500년 만에 다시 성벽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회복은 발칸 출신 군인 황제들이 해냈다.

아우렐리아누스가 5년 만에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를 되찾았다. 「세계의 회복자」라 불렸다.

그도 암살됐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285년에 판을 다시 짰다.

제국을 넷으로 나눠 다스리게 했다(사두정치). 물가를 법으로 정하려 했고, 세금을 물납으로 바꿨다.

직업을 세습하게 했다. 농민을 땅에 묶었다 — 뒤에 중세 농노제로 이어지는 흐름이 여기서 시작된다.

【남은 것】 제국이 살아남았지만 다른 것이 됐다.

황제가 시민 중의 제일인자(프린켑스)에서 신성한 주인(도미누스)이 됐다. 무릎을 꿇고 알현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군대가 커지고 관료제가 비대해졌다. 세금이 무거워졌다.

도시가 줄고 대농장이 늘었다. 사람들이 성벽 안이 아니라 유력자의 보호 아래로 갔다.

그리고 기독교가 이 시기에 크게 퍼졌다. 역병과 혼란 속에서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힘을 얻었다는 설명이 있다.

50년의 위기가 고대와 중세를 가르는 지점으로 자주 꼽힌다.

지도에서 보기: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3세기 로마-사산 전쟁 적벽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