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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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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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3세기의 위기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황건적의 난184 – 205
후한 vs 태평도

역병과 흉작에 관리의 수탈이 겹쳤다. 태평도의 장각이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선다」며 수십만을 모았다.

광종 184완성 184

결과진압을 맡긴 지방관들이 그대로 군벌이 됐다. 조조·유비·손권이 모두 여기서 이름을 얻었고, 후한은 이 난에서 실질적으로 끝났다.

21년 · 삼국시대의 문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사상170 · 막사에서 일기를 쓴 황제
AD 121 – AD 180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 「명상록」 — 남에게 보이려 쓴 글이 아니다
  • 마르코만니 전쟁을 직접 지휘
  • 오현제의 마지막 —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 실책
조조장군208 · 난세를 정면으로 받은 사람
AD 155 – AD 220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꺾음 200
  • 둔전제 — 병사가 농사를 지어 자급
  • 적벽에서 패해 통일이 60년 미뤄짐

그 무렵의 사건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165
안토니누스 역병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212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안 모든 자유민이 로마 시민이 됐다.
카라칼라가 속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줬다. 명분은 평등, 실제는 세수 — 시민만 내는 상속세를 걷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로마인」의 뜻이 혈통에서 소속으로 바뀐 사건이다.
220
삼국의 성립
한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황건적의 난

전쟁 · 184 · 후한 vs 태평도

역병과 흉작에 관리의 수탈이 겹쳤다. 태평도의 장각이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선다」며 수십만을 모았다. 진압을 맡긴 지방관들이 그대로 군벌이 됐다. 조조·유비·손권이 모두 여기서 이름을 얻었고, 후한은 이 난에서 실질적으로 끝났다.

【그때 그 자리】

2세기 후반 후한은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 황제가 잇달아 즉위하면서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권력을 쥐었다. 166년과 169년 당고의 화로 환관을 비판한 관료와 태학생 수백 명이 제거됐다. 나라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토지는 호족에게 몰렸다. 세금 내는 자영농이 줄고 소작농과 유랑민이 늘었다.

거기에 재해가 겹쳤다. 2세기 후반 30년 사이 큰 역병이 여러 차례 돌았다. 가뭄과 황허 범람도 있었다. 인구가 크게 줄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굶고 병들고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 수백만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장각이 태평도를 폈다.

방법이 단순했다. 병자에게 죄를 뉘우치게 하고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게 했다. 나으면 믿음 덕이고 낫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 했다.

의학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것이 통했다. 10년 사이 신도가 수십만이 됐다.

그는 신도를 36방으로 조직했다. 큰 방은 1만여 명, 작은 방은 6천에서 7천이었다. 각 방에 우두머리를 두었다. 종교 조직이 곧 군사 조직이 됐다.

구호가 이랬다. 창천은 이미 죽었으니 황천이 서야 한다,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창천은 후한을 가리키고 갑자년은 184년이다. 왕조의 명이 다했다는 선언이다. 앞서 상을 무너뜨린 주가 쓴 천명의 논리를, 이번에는 아래에서 꺼내 든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184년 봄 봉기했다. 노란 두건을 머리에 둘러 황건적이라 불렸다. 황색은 오행에서 흙의 색으로, 한의 화덕을 대신한다는 뜻이었다.

여덟 개 주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관청이 불타고 관리가 달아났다.

조정에는 진압할 병력이 없었다. 중앙군이 약했고 재정도 없었다.

그래서 지방에 군사권을 넘겼다. 주의 자사를 주목으로 격상해 군사와 행정을 함께 쥐게 하고, 호족들이 사병을 모아 진압에 나서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장각이 그해 병으로 죽고 주력은 1년 안에 진압됐다. 그런데 진압에 나선 자들이 군대를 그대로 쥐고 있었다.

조조와 유비와 손견이 이 전쟁에서 이름을 얻었다. 원소와 원술도 그렇다.

【그래서】

189년 동탁이 낙양을 장악했다. 이후 군벌들이 서로 싸웠다. 220년 후한이 끝나고 위·촉·오가 갈렸다.

삼국지의 첫 장면이 이 난이다.

【남은 것】

반란 자체는 1년 만에 꺾였지만 그 결과는 400년 왕조의 끝이었다. 진압하려고 만든 장치가 나라를 해체했다.

이 구조는 되풀이된다. 당은 안사의 난을 절도사에게 맡겨 진압하고 그 절도사들에게 무너졌다.

종교가 반란의 언어가 된 것도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원 말의 홍건적, 청 말의 태평천국, 그리고 조선의 동학이 각기 다른 신앙으로 같은 자리에 섰다.

공통점이 있다. 굶주림과 역병과 부패가 겹치고 국가가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할 때, 사람들은 이 세상이 끝나고 새 세상이 온다고 말하는 쪽으로 간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마르코만니 전쟁 적벽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