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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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고대의 끝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고구려·수 전쟁598 – 614
고구려 vs 수

왜중국을 통일한 수가 요서를 선제공격한 고구려를 응징하겠다며 네 차례 원정을 일으켰다. 612년 양제는 113만이라는 기록적인 대군을 동원했다.

요동성 612살수 612요동성 613

결과요동성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고, 평양으로 달려든 별동대 30만은 살수에서 궤멸했다. 수는 국력을 소진해 4년 뒤 망했다.

17년 · 네 차례 침공, 113만 대군이 살수에서 무너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쇼토쿠 태자정치604 · 일본의 틀을 세운 사람
574 – 622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만들었다. 그 불교와 기술은 백제에서 왔다.

  • 헌법 17조 — 화합을 첫 조항에
  • 관위 12계 — 혈통 아닌 능력
  • 호류지 — 세계 최고의 목조 건물
무함마드사상610 · 이슬람을 연 예언자
570 무렵 – 632

메카의 상인이었다가 40세 무렵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메카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헤지라, 622년)한 뒤 공동체를 조직해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통합했다.

  • 622년 헤지라(메디나 이주), 이슬람력의 기준
  • 630년 메카 무혈 입성
  • 사후 후계 문제가 순니-시아 분열의 씨앗이 됨
을지문덕장군612 · 고구려 장군
생몰 미상

수의 대군을 살수로 끌어들여 궤멸시켰다. 30만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이었다.

  • 수의 30만 별동대를 살수로 유인
  • 살수대첩 612
  • 적장에게 보낸 시 「여수장우중문」

그 무렵의 사건

600
티와나쿠와 와리
해발 3,800미터의 도시.
티티카카 호숫가에 돌을 정밀하게 깎아 맞춘 도시가 섰다. 높은 땅에서 얼지 않게 짓는 두둑 밭을 썼다. 북쪽의 와리와 함께 안데스를 나눠 가졌고, 두 세력이 무너진 자리에서 뒤에 잉카가 자란다.
600
소그드 상인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 출신 상인들이 수백 년간 실크로드 무역을 사실상 장악했다.
사마르칸트·부하라를 근거지로 한 소그드 상인들은 중국·페르시아·비잔티움을 잇는 대상 무역로에서 언어(소그드어)까지 국제 통용어로 쓰일 만큼 영향력이 컸다. 8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과 안사의 난 이후 실크로드 교역 구조가 바뀌며 서서히 영향력을 잃었다.
610
이슬람의 시작
메카의 상인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선언했다.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가 하나의 정치·종교권으로 묶인다.
612
살수대첩
수나라의 100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을지문덕은 살수(청천강)에서 이들을 크게 격파했다.
수 양제는 무리하게 대규모 원정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침공했다. 을지문덕은 정면 승부 대신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적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로 수나라 별동대를 평양 근처까지 깊숙이 유인한 뒤 철수시켰고, 지친 수나라 군대가 살수를 건너는 순간을 노려 크게 무찔렀다. 30만이 넘던 별동대 중 살아 돌아간 병력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이 참패는 수나라가 국력을 소진해 멸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622
헤지라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가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됐다.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신앙 공동체가 정치체가 된 순간.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628
영이 숫자가 되다
빈자리가 아니라 계산할 수 있는 수가 됐다.
브라마굽타가 영을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로 다뤘다. 음수도 함께 정리했다 — 빚을 재산에서 빼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개념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가서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 체계가 됐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고구려·수 전쟁

전쟁 · 598 · 113만 대군을 세 번 돌려보낸 17년

중국을 통일한 수가 요서를 선제공격한 고구려를 응징하겠다며 네 차례 원정을 일으켰다. 612년 양제는 113만이라는 기록적인 대군을 동원했다. 요동성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고, 평양으로 달려든 별동대 30만은 살수에서 궤멸했다. 수는 국력을 소진해 4년 뒤 망했다.

589년 수가 중국을 통일하자 고구려는 동북의 돌궐·거란과 손을 잡고 수를 견제했다. 598년 영양왕이 말갈 군사 1만으로 요서를 선제공격했고, 문제는 30만을 보냈으나 장마와 전염병, 폭풍으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612년 양제는 113만 3,800명이라는 숫자를 기록에 남긴 대군을 일으켰다. 보급 행렬까지 합치면 두 배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요동성은 다섯 달을 버텼고, 양제는 우중문·우문술에게 별동대 30만 5천을 떼어 평양을 직접 치게 했다.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과 후퇴를 거듭하며 별동대를 평양 30리 앞까지 끌어들였다. 하루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져 주는 사이 수군은 식량이 떨어졌다. 우중문에게 보낸 시 「그만하면 족하니 돌아가라」는 그 조롱이었다. 돌아서던 수군이 살수(청천강)를 건너는 순간 고구려군이 덮쳤고, 요동으로 살아 돌아간 것은 2,700명이었다.

613년과 614년의 원정도 요동성 앞에서 멈췄다. 양제가 싸움에 매달리는 사이 나라 안에서 반란이 잇따랐고, 수는 618년에 망했다. 통일 왕조를 무너뜨린 전쟁으로 평가된다. 뒤이어 당 태종이 645년 다시 고구려를 쳤지만 안시성에서 막혔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비잔티움-사산 최후의 전쟁 수의 통일 전쟁 야르무크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