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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중국을 통일한 수가 요서를 선제공격한 고구려를 응징하겠다며 네 차례 원정을 일으켰다. 612년 양제는 113만이라는 기록적인 대군을 동원했다.
결과요동성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고, 평양으로 달려든 별동대 30만은 살수에서 궤멸했다. 수는 국력을 소진해 4년 뒤 망했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만들었다. 그 불교와 기술은 백제에서 왔다.
메카의 상인이었다가 40세 무렵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메카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헤지라, 622년)한 뒤 공동체를 조직해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통합했다.
수의 대군을 살수로 끌어들여 궤멸시켰다. 30만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이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598 · 113만 대군을 세 번 돌려보낸 17년
중국을 통일한 수가 요서를 선제공격한 고구려를 응징하겠다며 네 차례 원정을 일으켰다. 612년 양제는 113만이라는 기록적인 대군을 동원했다. 요동성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고, 평양으로 달려든 별동대 30만은 살수에서 궤멸했다. 수는 국력을 소진해 4년 뒤 망했다.
589년 수가 중국을 통일하자 고구려는 동북의 돌궐·거란과 손을 잡고 수를 견제했다. 598년 영양왕이 말갈 군사 1만으로 요서를 선제공격했고, 문제는 30만을 보냈으나 장마와 전염병, 폭풍으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612년 양제는 113만 3,800명이라는 숫자를 기록에 남긴 대군을 일으켰다. 보급 행렬까지 합치면 두 배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요동성은 다섯 달을 버텼고, 양제는 우중문·우문술에게 별동대 30만 5천을 떼어 평양을 직접 치게 했다.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과 후퇴를 거듭하며 별동대를 평양 30리 앞까지 끌어들였다. 하루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져 주는 사이 수군은 식량이 떨어졌다. 우중문에게 보낸 시 「그만하면 족하니 돌아가라」는 그 조롱이었다. 돌아서던 수군이 살수(청천강)를 건너는 순간 고구려군이 덮쳤고, 요동으로 살아 돌아간 것은 2,700명이었다.
613년과 614년의 원정도 요동성 앞에서 멈췄다. 양제가 싸움에 매달리는 사이 나라 안에서 반란이 잇따랐고, 수는 618년에 망했다. 통일 왕조를 무너뜨린 전쟁으로 평가된다. 뒤이어 당 태종이 645년 다시 고구려를 쳤지만 안시성에서 막혔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비잔티움-사산 최후의 전쟁 수의 통일 전쟁 야르무크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