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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북주를 물려받은 양견이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을 노렸다. 장강을 건널 대형 전함을 몇 년에 걸쳐 지었다.
결과위진남북조 369년의 분열이 끝났다. 통일 뒤 대운하로 남북을 물길로 이었고, 그 부역이 30년 뒤 수를 무너뜨린다.
불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만들었다. 그 불교와 기술은 백제에서 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581 · 370년 만의 통일과 37년짜리 왕조
북주를 물려받은 양견이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을 노렸다. 장강을 건널 대형 전함을 몇 년에 걸쳐 지었다. 위진남북조 369년의 분열이 끝났다. 통일 뒤 대운하로 남북을 물길로 이었고, 그 부역이 30년 뒤 수를 무너뜨린다.
【그때 그 자리】 589년이다. 후한이 무너진 220년 이후 370년 가까이 중국이 갈려 있었다.
삼국, 서진의 짧은 통일, 오호십육국, 남북조로 이어졌다.
북쪽은 유목 민족이 세운 나라들이, 남쪽은 한족 왕조들이 이어졌다.
북주의 외척 양견이 581년 왕위를 넘겨받아 수를 세웠다.
【왜 그렇게 됐나】 북쪽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
북위 이래 균전제가 있었다. 나라가 땅을 나눠 주고 세금과 부역을 걷는 방식이다.
부병제가 있었다. 농민이 평소 농사짓다 번갈아 군역을 지는 제도로, 상비군을 유지하는 비용이 적었다.
그리고 북쪽의 지배층이 한족과 선비족이 섞인 집단이었다. 유목의 군사력과 한족의 행정이 합쳐져 있었다.
남쪽 진(陳)은 반대였다. 귀족들이 실권을 쥐고 사치했으며, 마지막 황제 진숙보는 시를 짓고 연회를 열었다.
【어떻게 흘렀나】 준비에 8년이 걸렸다.
먼저 북쪽의 돌궐을 이간해 동서로 갈랐다. 뒤를 안전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남쪽을 지치게 했다. 추수철마다 군대를 움직이는 시늉을 해서 진이 농사를 못 짓게 했다. 몇 년 되풀이하자 진이 대비를 게을리하게 됐다.
국경에 창고를 짓고 곡식을 쌓았다. 일부러 불이 나게 두어 진이 방심하게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588년 겨울 51만 8천 명을 여덟 갈래로 나눠 장강을 건넜다.
진의 방어선이 길어 어디를 막아야 할지 몰랐다.
589년 정월 건강이 함락됐다. 진숙보는 우물에 숨어 있다가 붙잡혔다.
【그래서】 통일 뒤에 한 일이 크다.
과거제를 시작했다.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방식이다. 문벌 귀족의 세습을 깨는 장치였고, 그 뒤 1,300년을 간다.
3성 6부제를 정비했다. 당이 그대로 이어받고, 그것이 신라와 일본으로 간다.
대운하를 팠다. 남쪽의 곡식을 북쪽으로 나르는 길이다. 이것이 그 뒤 중국을 하나로 묶는 동맥이 된다.
【남은 것】 그런데 37년 만에 망했다.
2대 양제가 무리했다. 대운하 공사에 100만 명이 넘게 동원됐고, 낙양을 새로 지었으며, 고구려를 세 번 쳤다.
612년 1차 고구려 원정에 113만이 동원됐다. 살수에서 대패했다.
농민 반란이 터졌고 618년 양제가 부하에게 살해됐다.
「진이 만리장성을 쌓고 망했고 수가 운하를 파고 망했다」는 말이 있다.
다만 남긴 것을 당이 그대로 썼다. 과거제와 운하와 관제가 그것이다.
수는 짧았고, 수가 만든 틀은 길었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비잔티움-사산 최후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