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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서역으로 떠났다가 10년을 포로로 지냈다. 탈출해 임무를 마치고 13년 만에 돌아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전쟁 · BC 113 · 로마가 군대를 다시 만든 이유
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그때 그 자리】 BC 113년이다. 북쪽에서 낯선 무리가 내려왔다.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족이다. 지금의 덴마크 유틀란트 쪽에서 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군대가 아니었다. 여자와 아이와 짐수레를 끌고 오는 이주 집단이었다. 수십만 명으로 추정한다.
땅을 달라고 했다. 로마가 거절했다.
【왜 그렇게 됐나】 로마가 이들을 얕봤다.
그리고 다섯 번 크게 졌다.
노레이아·부르디갈라·아라우시오에서 차례로 군단이 무너졌다.
BC 105년 아라우시오가 최악이었다. 로마군 8만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칸나에 이후 최대 참사다.
지휘관 둘이 사이가 나빠 따로 진을 쳤고, 하나가 무너지자 다른 하나도 무너졌다.
패인이 뚜렷했다. 집정관이 해마다 바뀌어 지휘가 이어지지 않았고, 귀족 출신 지휘관이 군사 경험 없이 임명됐으며, 재산이 있는 시민만 병사로 받아 병력이 모자랐다.
이탈리아가 공황에 빠졌다. 「킴브리의 공포」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어떻게 흘렀나】 마리우스가 나섰다.
법을 어기고 연속으로 집정관에 뽑혔다. 5년 연임했다.
그리고 군을 뜯어고쳤다.
재산 자격을 없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지원하면 병사가 됐고, 장비는 국가가 댔다.
복무 기간을 16년으로 정하고, 제대할 때 땅을 주기로 했다.
병사가 짐을 스스로 지게 했다. 짐수레를 줄여 행군 속도를 높인 것이다 — 「마리우스의 노새」라 불렸다.
군단의 기본 단위를 코호트로 바꾸고, 독수리 군기를 각 군단의 상징으로 통일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킴브리와 테우토네스가 갈라져 각각 다른 길로 이탈리아로 들어오려 하자, 하나씩 상대했다.
BC 102년 아쿠아이 섹스티아이에서 테우토네스를, BC 101년 베르켈라이에서 킴브리를 궤멸시켰다.
【그래서】 로마가 살아남았다. 마리우스는 「제3의 건국자」라 불렸다.
그런데 그가 만든 군대가 나중에 문제가 됐다.
가진 것 없는 병사에게 제대 후의 땅이 전부였다. 그것을 얻어 주는 사람이 원로원이 아니라 지휘관이었다.
병사가 나라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됐다.
【남은 것】 13년 뒤 술라가 그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한다. 마리우스와 술라가 서로를 죽이는 내전이 이어진다.
40년 뒤 카이사르가 같은 일을 한다.
로마를 구한 개혁이 공화정을 무너뜨리는 장치가 됐다. 이 역설이 로마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고조선-한 전쟁 제3차 포에니 전쟁 스파르타쿠스의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