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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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BC 181 – BC 133
로마 vs 이베리아 부족

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비리아투스의 저항 BC 147누만티아 공성 BC 134

결과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48년 · 로마의 첫 장기 소모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스키피오장군BC 202 · 로마 집정관
BC 236 – BC 183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려 카르타고 본토를 쳤다. 자마에서 그를 꺾었다.

  • 에스파냐에서 카르타고를 몰아냄
  • 본토를 쳐 한니발을 불러들임
  • 자마에서 한니발을 꺾음
유방정치BC 202 · 농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고조
BC 256 – BC 195, 재위 BC 202 – BC 195

정장(亭長)이던 사내가 항우를 꺾고 400년 한 제국의 문을 열었다. 「사람을 쓸 줄 알았다」는 것이 스스로 꼽은 승인이었다.

  • 진 멸망 후 초한전쟁에서 항우 격파
  • 한(漢) 건국, 장안 도읍
  • 군국제로 봉건과 군현을 절충
항우장군BC 206 · 초한전쟁에서 진 서초패왕
BC 232 – BC 202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사면초가에 갇혔다.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 됐다.

  • 거록 전투에서 진군 주력 격파
  • 함양 점령, 서초패왕 자칭
  • 해하 전투 패배 후 오강에서 자결

그 무렵의 사건

BC 194
위만조선 성립
연나라 출신 위만이 고조선 준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BC 146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같은 해에 두 도시가 지워졌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몇 달 뒤 코린토스도 파괴했다. 지중해 서쪽과 동쪽의 마지막 경쟁자가 함께 사라진 해로, 로마의 지중해 지배가 여기서 확정된다.
BC 221
진의 중국 통일
시황제가 처음으로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군현제와 문자 통일이 이후 2천 년 중국의 틀이 됐다.
BC 138
장건의 서역행
한 사람이 길을 열어 실크로드가 됐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장건을 보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동맹은 못 구했지만 서역의 나라들을 보고했고, 그 정보가 실크로드 교역의 시작이 됐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

전쟁 · BC 181 · 로마가 20년을 못 이긴 곳

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그때 그 자리】 BC 2세기 이베리아반도다. 2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가 카르타고에게서 이곳을 넘겨받았다.

해안은 곧 정리됐다. 문제는 내륙이었다.

켈티베리아인과 루시타니아인이 있었다. 부족 단위로 살았고, 중앙 권력이 없었다.

그래서 항복을 받아 낼 상대가 없었다. 한 부족과 협정을 맺어도 다른 부족이 다시 나왔다.

【왜 그렇게 됐나】 로마 총독들의 행태가 불을 질렀다.

BC 150년 총독 갈바가 루시타니아인들에게 땅을 나눠 주겠다며 무장 해제를 시킨 뒤 학살했다. 3만 명이 죽거나 노예로 팔렸다.

로마에서도 문제가 됐다. 대(大)카토가 그를 고발했으나, 갈바가 자기 아이들을 법정에 데려와 울며 호소해 무죄를 받았다.

그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비리아투스가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비리아투스는 목동 출신이라 전한다.

게릴라전을 했다. 산으로 유인하고, 물러나는 척하다 돌아서고, 야간에 쳤다.

8년 동안 로마 군단을 여러 차례 깼다. 총독 하나를 협곡에 가둬 항복을 받아 내기도 했다.

로마가 이길 수 없자 그의 부하 셋을 매수했다. BC 139년 자는 사이에 살해했다.

돈을 받으러 온 그들에게 로마 사령관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로마는 배신자에게 값을 치르지 않는다.」

이어 켈티베리아의 누만티아다. 인구 수천의 작은 도시가 20년을 버텼다.

로마가 여러 번 실패한 끝에, 카르타고를 무너뜨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보냈다.

그가 정면 공격을 포기했다. 도시를 9km 길이의 벽으로 둘러싸고 강까지 막았다.

8개월을 굶겼다. BC 133년 함락됐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이베리아 내륙이 정리되는 데 200년 가까이 걸렸다. 아우구스투스 때에야 끝난다.

로마가 가장 오래 고전한 지역 가운데 하나다.

【남은 것】 이 전쟁이 로마 안에도 영향을 미쳤다.

복무 기간이 길고 전리품이 적어 병사들이 기피했다. 징집 거부가 문제가 됐다.

그 경험이 마리우스의 군 개혁으로 이어진다 — 재산이 없는 사람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대는 방식이다.

그것이 다시 직업군인을 낳았고, 장군에게 충성하는 군대를 낳았다. 공화정이 무너지는 경로다.

에스파냐에서 비리아투스와 누만티아는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다. 세르반테스가 「누만시아의 포위」라는 희곡을 썼다.

누만티아 유적은 지금 스페인의 국가 기념물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제3차 포에니 전쟁 제2차 포에니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