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포에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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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헬레니즘 왕국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 – BC 201
로마 vs 카르타고 (한니발)

1차전에서 잃은 것을 에스파냐에서 메우던 카르타고를 로마가 견제했다. 한니발이 로마 동맹시 사군툼을 치면서 터졌다.

트라시메노 BC 217칸나이 BC 216메타우루스 BC 207자마 BC 202

결과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칸나이에서 로마군을 궤멸시켰지만, 스키피오가 본토를 쳐서 끝냈다.

17년 · 칸나이 하루에 로마군 5만이 죽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8명

한니발장군BC 216 · 코끼리로 알프스를 넘은 사람
BC 247 – BC 183

아홉 살에 로마를 미워하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다. 15년간 이탈리아 안에서 싸우며 로마를 여러 번 궤멸시켰다.

  • 알프스 도하 — 코끼리 37마리와 함께
  • 칸나이 BC 216 — 포위섬멸의 교과서
  • 자마에서 패한 뒤 망명지에서 자결
진시황정치BC 221 · 최초의 황제
BC 259 – BC 210

흩어진 전국을 하나로 묶고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했다. '황제'라는 말이 여기서 시작된다.

  • 전국을 통일해 최초의 황제가 됨 BC 221
  • 문자·도량형·화폐를 하나로
  • 만리장성 연결과 병마용
아르키메데스과학BC 212 · 목욕탕에서 뛰어나온 사람
BC 287 – BC 212

부력을 알아내고 지렛대의 원리를 밝혔다. 시라쿠사 공성 때 만든 기계들이 로마 함대를 여러 번 막았다.

  • 부력의 원리 — 「유레카」
  • 지렛대와 도르래 · 나선 양수기
  • 「내 원을 밟지 마라」 — 계산 중에 살해됨
항우장군BC 206 · 초한전쟁에서 진 서초패왕
BC 232 – BC 202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사면초가에 갇혔다.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 됐다.

  • 거록 전투에서 진군 주력 격파
  • 함양 점령, 서초패왕 자칭
  • 해하 전투 패배 후 오강에서 자결
한비자사상BC 233 · 법·술·세로 군주의 통치술을 정리한 법가의 완성자
BC 280 무렵 – BC 233

인간은 이익으로 움직이니 상과 벌로 다스려라. 진시황이 그의 글을 읽고 만나고 싶어 했으나 동문 이사의 모함으로 옥사했다.

  • 「한비자」 55편
  • 법(法)·술(術)·세(勢)의 종합
  • 진에서 이사의 참소로 사사
스키피오장군BC 202 · 로마 집정관
BC 236 – BC 183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려 카르타고 본토를 쳤다. 자마에서 그를 꺾었다.

  • 에스파냐에서 카르타고를 몰아냄
  • 본토를 쳐 한니발을 불러들임
  • 자마에서 한니발을 꺾음
유방정치BC 202 · 농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고조
BC 256 – BC 195, 재위 BC 202 – BC 195

정장(亭長)이던 사내가 항우를 꺾고 400년 한 제국의 문을 열었다. 「사람을 쓸 줄 알았다」는 것이 스스로 꼽은 승인이었다.

  • 진 멸망 후 초한전쟁에서 항우 격파
  • 한(漢) 건국, 장안 도읍
  • 군국제로 봉건과 군현을 절충
에라토스테네스과학BC 240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
BC 276 무렵 – BC 194 무렵

그림자만으로 지구 둘레를 재다

  • 그림자 각도로 지구 둘레 계산
  • 오차 몇 % 이내의 정확도
  • 지리학이라는 말을 처음 씀

그 무렵의 사건

BC 221
진의 중국 통일
시황제가 처음으로 중국을 하나로 묶었다.
군현제와 문자 통일이 이후 2천 년 중국의 틀이 됐다.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BC 194
위만조선 성립
연나라 출신 위만이 고조선 준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제2차 포에니 전쟁

전쟁 · BC 218 · 로마 vs 카르타고 (한니발)

1차전에서 잃은 것을 에스파냐에서 메우던 카르타고를 로마가 견제했다. 한니발이 로마 동맹시 사군툼을 치면서 터졌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칸나이에서 로마군을 궤멸시켰지만, 스키피오가 본토를 쳐서 끝냈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64년부터 241년까지 이어진 1차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시칠리아를 잃었다. 배상금까지 물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에스파냐로 가서 은광을 개발하고 세력을 키웠다. 잃은 것을 다른 곳에서 메운 것이다.

아들 한니발이 아홉 살에 아버지 앞에서 로마를 영원한 적으로 삼겠다고 맹세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219년 한니발이 에스파냐의 사군툼을 쳤다. 로마와 동맹 관계인 도시였다. 로마가 선전포고했다.

한니발의 계산은 이랬다. 바다에서는 로마 해군을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육로로 간다.

기원전 218년 그는 병사 5만과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피레네를 넘고 론강을 건너 알프스로 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은 경로였다. 로마는 에스파냐나 아프리카에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흘렀나】

알프스를 넘는 데 15일이 걸렸고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 눈사태와 산악 부족의 공격 때문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들어선 뒤로는 계속 이겼다.

기원전 218년 트레비아, 기원전 217년 트라시메노 호수에서 로마군을 깼다. 트라시메노에서는 안개를 이용해 호수와 산 사이 좁은 길에 로마군을 가두었다.

기원전 216년 칸나에가 절정이다. 그는 중앙을 일부러 얇게 배치해 뒤로 물러나게 했다. 로마군이 그 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양옆의 정예 보병이 감싸고 기병이 뒤를 막았다. 하루에 로마군 5만에서 7만이 죽었다. 하루 전사자 수로 서양사에서 손꼽힌다.

이 포위 전술은 지금도 사관학교에서 가르친다. 1차 세계대전의 슐리펜 계획도 칸나에를 모범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기고도 이기지 못했다.

로마의 동맹 도시 대부분이 배신하지 않았다. 로마가 정복지에 시민권과 동맹 지위를 나눠 준 정책이 여기서 값을 했다.

로마는 병력을 계속 채워 넣었다. 파비우스가 정면 대결을 피하고 보급을 끊는 지구전을 폈다. 처음에는 겁쟁이라 조롱받았지만 이 전략이 통했다.

카르타고 본국은 한니발에게 충분한 지원을 보내지 않았다. 상인 귀족들이 전쟁 확대를 꺼렸다.

【그래서】

스키피오가 에스파냐를 정리한 뒤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카르타고가 급히 한니발을 불렀다.

기원전 202년 자마에서 두 사람이 맞섰다. 스키피오는 코끼리 돌격에 대비해 대열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코끼리가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한 것이다. 그리고 기병에서 앞섰다. 한니발이 졌다.

카르타고는 해외 영토를 다 잃고 함대가 열 척으로 제한됐다.

【남은 것】

로마는 이 전쟁으로 지중해의 유일한 강자가 됐다.

동시에 안이 바뀌었다. 16년간 이탈리아가 전장이 되면서 자영농이 몰락했다. 그 자리에 노예를 쓰는 대농장이 들어섰다. 이 변화가 100년 뒤 공화정 붕괴의 배경이 된다. 이긴 전쟁이 나라의 구조를 바꿨다.

한니발은 뒤에 카르타고에서 개혁을 시도하다 로마의 압박으로 망명했고, 기원전 183년 붙잡히기 직전 독을 마셨다.

전술로는 이겼는데 전쟁에서 진 사례로 지금도 인용된다. 한 번의 결정적 승리로 끝나지 않는 상대와 싸울 때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