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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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공화정의 위기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2건

갈리아 전쟁BC 58 – BC 50
로마 vs 갈리아 부족 연합

카이사르에게는 정치 자금과 군사적 명성이 절실했다. 헬베티족의 이동과 게르만의 압박을 명분 삼아 갈리아 전역으로 전선을 넓혔다.

비브락테 BC 58게르고비아 BC 52알레시아 BC 52

결과알레시아에서 베르킨게토릭스가 항복했다. 카이사르는 이 군대로 로마를 차지한다.

8년 · 카이사르 자신의 기록으로 100만 사망·100만 노예
카이사르 내전BC 49 – BC 45
카이사르파 vs 폼페이우스·원로원파

원로원이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오라 명했다. 무장을 풀면 기소당할 것이 분명해 그는 루비콘을 건넜다.

파르살루스 BC 48탑수스 BC 46문다 BC 45

결과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를 꺾었다. 공화정이 사실상 끝났다.

4년 · 로마 세계 전역이 전장이 됐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5명

카이사르정치BC 44 · 종신 독재관
BC 100 – BC 44

갈리아를 정복한 군대로 로마를 차지했다. 공화정을 끝냈고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 갈리아 정복
  • 루비콘을 건너 내전에서 승리
  • 율리우스력 도입
클레오파트라정치BC 41 ·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은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BC 69 – BC 30, 재위 BC 51 – BC 30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의 마지막 통치자. 로마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키려 했으나 악티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카이사르와 동맹, 아들 카이사리온
  • 안토니우스와 동방 재편
  • 악티움 패배 후 자결, 이집트의 로마 속주화
폼페이우스장군BC 60 · 카이사르와 맞선 로마의 「위대한」 장군
BC 106 – BC 48

지중해 해적을 석 달 만에 소탕하고 동방을 정복했으나, 삼두정치가 깨진 뒤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에게 졌다.

  • 지중해 해적 소탕(BC 67)
  • 미트리다테스 격파, 시리아·유대 병합
  • 파르살루스 패배 후 이집트에서 암살
키케로정치BC 63 · 공화정을 지키려다 죽은 로마 최고의 웅변가
BC 106 – BC 43

카틸리나의 음모를 폭로하고 안토니우스를 탄핵했다. 그의 라틴어 문장은 유럽 산문의 교과서가 됐다.

  • 집정관으로 카틸리나 음모 분쇄(BC 63)
  • 「국가론」「의무론」 등 철학·수사학 저작
  • 안토니우스 비판(필리피카)으로 처형
아우구스투스정치BC 27 · 초대 황제
BC 63 – AD 14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여기서 시작된다.

  • 악티움 승리로 내전을 끝냄
  • 공화정의 외피를 쓴 원수정 수립
  • 200년 로마 평화의 출발

그 무렵의 사건

BC 44
카이사르 암살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공화정 회복 대신 제국이 왔다.
공화정 회복을 노린 암살이 오히려 제정을 앞당겼다.
BC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BC 100
옥저와 동예
고조선이 무너진 뒤 함경도·강원도 북부 동해안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라는 작은 나라들이 자리 잡았다. 둘 다 왕이 없이 각 읍락을 우두머리(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는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해 고구려에 공물로 바쳤고, 신랑이 어릴 신부를 미리 데려가 키운 뒤 성인이 되면 정식 혼인하는 민며느리제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동예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가축으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라는 제도와, 매년 10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무천이라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훗날 고구려에 흡수됐다.
BC 100
삼한(마한·진한·변한)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가 자리했다. 이들을 통틀어 삼한이라 부르며, 훗날 각각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해 나갔다.
삼한은 각 소국마다 정치를 맡는 우두머리(신지·읍차 등)와,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따로 있는 제정 분리 사회였다.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는 죄인이 도망쳐 들어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 변한 지역은 철이 풍부해 낙랑·왜 등에 수출했으며, 이 철 생산 기반은 훗날 가야 연맹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카이사르 내전

전쟁 · BC 49 · 루비콘 이후 4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오라 명했다. 무장을 풀면 기소당할 것이 분명해 그는 루비콘을 건넜다. 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를 꺾었다. 공화정이 사실상 끝났다.

【그때 그 자리】 BC 49년이다. 삼두정치가 깨졌다.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에서 전사했고, 폼페이우스의 아내이자 카이사르의 딸인 율리아가 죽어 두 사람을 잇던 끈이 사라졌다.

원로원이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오라 했다. 그러면 갈리아 원정 중의 일들로 기소될 것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1월 10일 루비콘강을 건넜다. 속주와 이탈리아 본토의 경계다. 군단을 이끌고 넘는 것 자체가 반역이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했다 전한다. 실은 그리스 희극의 한 구절을 그리스어로 인용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데리고 건넌 것은 1개 군단, 5천 명 남짓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폼페이우스가 로마를 버리고 그리스로 갔다. 그쪽에 그의 기반이 있었다.

카이사르가 두 달 만에 이탈리아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배가 없었다.

먼저 에스파냐로 갔다. 「나는 군대 없는 지휘관을 상대하러 간다. 그 뒤에 지휘관 없는 군대를 상대하러 가겠다.」

이듬해 그리스로 건너갔다. 디라키움에서 크게 졌다. 폼페이우스가 추격했다면 끝났을 것이다.

BC 48년 8월 파르살루스. 병력이 카이사르 2만 2천, 폼페이우스 4만 5천이었다.

폼페이우스의 기병이 우회하자, 카이사르는 미리 숨겨 둔 보병 여섯 코호트에게 창을 던지지 말고 얼굴을 찌르라 명했다. 귀족 자제가 많던 기병들이 얼굴을 다치기 싫어 물러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달아났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신하들이 그의 목을 베어 카이사르에게 바쳤다.

카이사르가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끝나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알렉산드리아 전쟁에 휘말렸고, 클레오파트라를 왕좌에 앉혔다.

소아시아에서 파르나케스를 닷새 만에 꺾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보냈다.

아프리카의 탑수스, 에스파냐의 문다에서 남은 세력을 마저 꺾었다. BC 45년에야 끝났다.

【남은 것】 종신 독재관이 됐고 이듬해 암살됐다.

그를 죽인 사람들은 공화정을 되살리려 했으나, 그 결과로 또 다른 내전이 났고 그 끝에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이 선다.

루비콘은 지금 어느 강인지 확실하지 않다. 후보가 셋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갈리아 전쟁 악티움 해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로마의 게르마니아 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