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이슬람의 등장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2건
투르-푸아티에 전투732
프랑크 왕국 vs 우마이야 칼리파국
왜이베리아를 장악한 우마이야 세력이 피레네를 넘어 갈리아 남부를 약탈했다.
투르-푸아티에 732
결과카롤루스 마르텔이 저지했다. 이슬람의 서유럽 진출이 여기서 멈춘다.
하루 · 이슬람 지휘관이 전사하며 북진이 멈췄다
발해·당 전쟁732 – 733
발해 vs 당·신라
왜흑수말갈이 당과 직접 손을 잡자 발해 무왕은 이를 포위로 보았다. 동생 대문예가 당으로 망명하자 갈등이 폭발했다.
등주 공격 732마도산 733
결과장문휴의 수군이 당의 등주를 기습해 자사를 죽였다. 당은 신라에 발해 남쪽을 치게 했으나 폭설로 실패했고, 발해는 당과 대등한 관계를 인정받았다.
2년 · 바다 건너 당의 등주를 쳤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카를 마르텔장군732 · 망치라 불린 사람
AD 688 – AD 741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
교회 재산으로 기병을 육성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
이백예술750 · 술과 달의 시인
AD 701 – AD 762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당시(唐詩)의 정점 — 「시선」이라 불림
안사의 난에 휘말려 유배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죽었다는 전설
압둘 라흐만 1세정치756 · 몰살을 피해 도망친 왕자
731 – 788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5년의 도피
코르도바 후우마이야 건국
코르도바 대모스크 착공
그 무렵의 사건
700
스리위자야의 번성
땅이 아니라 바닷길을 지배해 부를 쌓은 나라였다.
수마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말라카 해협을 장악해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배들에게 통행세를 물렸다. 7세기 중국 승려 의정은 이곳에 승려 1천 명이 공부하는 불교 학문 중심지가 있다고 기록했다. 농사보다 무역에 기댄 「바다의 나라」였던 셈이다. 1025년 인도 남부의 촐라 왕조가 함대를 보내 왕도를 약탈했다 — 남아시아 해군력이 동남아시아까지 미친 드문 사례다. 이후 항구에 토사가 쌓이고 다른 항구들이 크며 서서히 저물었다.
698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고구려 유민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682
신문왕의 왕권 강화
삼국통일 직후 즉위한 신라 신문왕은 반란을 진압해 진골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학을 세워 왕권 중심의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이자 유력 진골 귀족이던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것을 계기로, 이에 연루된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귀족에게 지급하던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해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국립 교육기관 국학을 세워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길러냈다. 지방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해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기반도 마련했다.
676
신라의 삼국통일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다만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
671
스리위자야
말라카 해협을 쥔 바다의 나라.
수마트라의 팔렘방을 중심으로 인도와 중국을 잇는 길목을 600년간 쥐었다. 당의 승려 의정이 이곳에 머물며 산스크리트를 배웠다. 성을 남기지 않아 오래 잊혔다가 20세기에 비문으로 확인됐다.
800
카롤루스의 대관
교황이 프랑크 왕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황제의 오랜 다툼도 여기서 싹튼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발해·당 전쟁
전쟁 · 732 · 바다 건너 등주를 친 발해
흑수말갈이 당과 직접 손을 잡자 발해 무왕은 이를 포위로 보았다. 동생 대문예가 당으로 망명하자 갈등이 폭발했다. 장문휴의 수군이 당의 등주를 기습해 자사를 죽였다. 당은 신라에 발해 남쪽을 치게 했으나 폭설로 실패했고, 발해는 당과 대등한 관계를 인정받았다.
발해 무왕은 북쪽 흑수말갈이 발해를 거치지 않고 당과 직접 손잡자 이를 포위로 보았다. 흑수말갈을 치라는 명을 받은 동생 대문예가 당과의 전쟁을 반대하다 당으로 망명하자 갈등은 당과의 전쟁으로 번졌다.
732년 장문휴가 이끈 발해 수군이 산둥반도의 등주를 기습해 자사 위준을 죽였다. 당의 동해안 거점을 발해가 먼저 쳤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해 발해군은 요서의 마도산에서도 당군과 싸웠다.
당은 신라에 발해의 남쪽을 치게 했다. 733년 김윤중이 이끈 신라군이 북진했으나 폭설을 만나 절반이 얼어 죽고 돌아왔다. 당은 신라에 대동강 이남의 영유를 공식으로 인정해 주며 보상했다.
이 전쟁 뒤 당은 발해를 힘으로 누를 수 없다고 보고 관계를 바꿨다. 문왕 때부터 발해는 당과 활발히 교류하며 「해동성국」으로 불리는 번영기에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