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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라인강 동쪽의 색슨족을 정복하고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다. 색슨은 30년 넘게 봉기를 반복했다.
결과4,500명을 하루에 처형한 베르덴 학살이 저항을 더 키웠다. 결국 정복했고, 이 정복으로 카롤루스는 800년 황제 대관을 받는다.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나라의 큰 절들이 정치에 개입하자 수도를 헤이안쿄로 옮겼다. 새 도성에는 사찰을 함부로 못 짓게 했다. 이 도시가 이후 1,074년간 수도였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전쟁 · 772 · 33년의 개종 전쟁
라인강 동쪽의 색슨족을 정복하고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다. 색슨은 30년 넘게 봉기를 반복했다. 4,500명을 하루에 처형한 베르덴 학살이 저항을 더 키웠다. 결국 정복했고, 이 정복으로 카롤루스는 800년 황제 대관을 받는다.
【그때 그 자리】 8세기 후반이다. 프랑크 왕국은 이미 기독교 국가였다.
그 동북쪽, 지금의 독일 북부에 색슨족이 있었다. 왕이 없었다 — 부족 회의로 움직이는 여러 집단이었다.
그래서 항복을 받아 낼 상대가 없었다. 한 집단과 화약을 맺어도 다른 집단이 다시 쳐들어왔다.
【왜 그렇게 됐나】 772년 카롤루스가 원정을 시작했다.
첫 목표가 이르민술이었다. 색슨의 성스러운 기둥으로, 세계를 떠받치는 나무를 상징했다.
그것을 베어 넘겼다. 종교 전쟁임을 처음부터 밝힌 것이다.
카롤루스에게 개종과 복속은 하나였다. 세례를 받는 것이 곧 프랑크 왕국의 신민이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33년을 끌었다. 열여덟 차례 원정했다.
비두킨트라는 지도자가 저항의 중심이었다. 물러섰다가 카롤루스가 다른 곳으로 가면 다시 일어났다.
782년 페르덴에서 색슨 포로 4,500명을 하루에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크 연대기에 적혀 있다.
숫자가 과장이라는 견해, 「처형」이 아니라 「강제 이주」의 오기라는 견해가 있다. 그래도 규모 있는 학살이 있었다는 데는 이견이 적다.
「색슨 지방 칙령」을 냈다. 세례를 거부하면 사형, 사순절에 고기를 먹으면 사형, 화장(火葬)하면 사형이었다.
너무 가혹하다는 비판이 안에서도 나왔다. 알퀸이 편지에 적었다 — 「믿음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다.」
797년 칙령을 완화했다.
【그래서】 785년 비두킨트가 세례를 받았다. 카롤루스가 대부가 됐다.
804년에야 끝났다. 마지막으로 엘베강 북쪽 주민 수천 명을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남은 것】 유럽의 판이 바뀌었다. 프랑크 왕국이 라인강을 넘어 엘베강까지 갔다.
그 넓이가 800년 카롤루스의 황제 대관식의 바탕이 된다. 서유럽이 하나의 기독교 세계로 묶인 것이다.
색슨 지방이 뒤에 신성로마제국의 중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오토 왕조가 색슨 출신이다.
700년 뒤 마르틴 루터가 그 땅에서 나온다.
독일에서 카롤루스(카를 대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오래 논쟁이었다. 국가의 아버지로 보는 쪽과, 색슨을 학살한 프랑크 정복자로 보는 쪽이 갈렸다.
지금 유럽연합이 주는 상 가운데 「카를 대제 상」이 있다. 유럽 통합에 기여한 사람에게 준다.
지도에서 보기: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안사의 난 탈라스 전투 바이킹 시대 투르-푸아티에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