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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왜고조선이 한과 남쪽 진국 사이의 중계 무역을 막고 사신을 살해하자, 흉노와 고조선이 손잡는 것을 우려한 한 무제가 원정을 결정했다.
결과1년의 농성 끝에 지배층 내분으로 왕검성이 함락됐다. 한사군이 설치된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전쟁 · BC 109 · 고조선 vs 전한
고조선이 한과 남쪽 진국 사이의 중계 무역을 막고 사신을 살해하자, 흉노와 고조선이 손잡는 것을 우려한 한 무제가 원정을 결정했다. 1년의 농성 끝에 지배층 내분으로 왕검성이 함락됐다. 한사군이 설치된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세기 고조선은 위만이 왕위를 잡은 뒤 철기를 받아들이며 커졌다. 서쪽으로 연나라와 다투다 밀린 적이 있었지만,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했다.
이 나라의 힘은 위치에서 나왔다. 한과 한반도 남쪽의 진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독점했다. 남쪽 나라들이 한과 직접 통하지 못하게 막고 이익을 챙겼다.
한은 무제 때였다. 흉노와 40년 넘게 싸우며 사방으로 뻗던 시기다. 서역으로 장건을 보내고 남쪽으로 남월을 정복했다.
【왜 그렇게 됐나】
한의 입장에서 고조선은 두 가지로 문제였다. 하나는 중계 무역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흉노와 손잡을 가능성이었다. 실제로 한 무제는 고조선이 흉노의 왼팔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기원전 109년 한이 사신 섭하를 보내 우거왕에게 입조를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섭하는 돌아가는 길에 배웅 나온 고조선 장수를 죽이고 도망쳤다. 한은 그를 벌하기는커녕 요동 지역 관리로 임명했다. 우거왕이 군사를 보내 섭하를 죽였다. 이것이 개전 명분이 됐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109년 가을 한이 두 방향으로 왔다. 양복이 수군 5만을 이끌고 산둥에서 바다를 건너고, 순체가 육군을 이끌고 요동에서 들어왔다.
고조선은 잘 버텼다. 양복의 수군이 먼저 도착해 성급히 공격했다가 크게 졌다. 순체의 육군도 패수에서 막혔다.
한의 지휘부가 어지러웠다. 두 장수가 서로 공을 다투고 협조하지 않았다. 화친 협상 중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무제가 보낸 공손수는 순체의 말만 듣고 양복을 체포했다가 자기가 처형됐다. 뒤에 순체도 처형되고 양복은 서인이 됐다. 이긴 쪽 장수들이 모두 벌을 받은 드문 경우다.
1년을 버텼다. 그런데 안에서 갈라졌다.
조선상 노인과 한음, 니계상 참 같은 대신들이 항복을 주장하다 한으로 넘어갔다. 기원전 108년 여름 니계상 참이 사람을 보내 우거왕을 죽였다. 그래도 대신 성기가 계속 저항하자 왕자 장과 노인의 아들이 성기를 죽였다.
왕검성이 무너졌다.
【그래서】
한은 낙랑·임둔·진번·현도 네 군을 두었다. 이 가운데 셋은 오래 못 가고 낙랑만 313년까지 400년 넘게 존속했다.
낙랑은 중국 문물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통로가 됐다. 이 시기에 남부로 철기가 퍼지고 삼한이 자란다.
【남은 것】
밖의 힘보다 안의 분열이 먼저였다는 점이 이 전쟁의 핵심이다. 1년을 버틴 나라가 대신들의 배신으로 끝났다. 668년 고구려도 같은 방식으로 무너진다.
낙랑군의 위치를 두고 논쟁이 있다. 평양 일대로 보는 것이 학계 다수설이고, 발굴된 무덤과 유물이 근거다. 요서에 있었다는 주장도 오래 제기돼 왔으나 고고학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 논쟁이 뜨거운 이유는 식민사학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낙랑군을 강조해 한국사가 처음부터 외부 지배로 시작했다고 서술한 역사가 있다. 다만 그 반작용으로 자료를 무시하는 것도 역사가 아니다. 낙랑이 있었다는 것과 한국사가 그것으로 규정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킴브리 전쟁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제3차 포에니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