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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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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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종교전쟁

가톨릭과 개신교가 국가 단위로 갈라져 싸웠다. 신앙이 곧 국제 정치였고 30년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한반도

양란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전쟁 3건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 – 1648
네덜란드 북부 7주 vs 스페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과세와 가톨릭 강요에 개신교(칼뱅파)가 강한 네덜란드 북부 주들이 반발했다.

레이던 공방전 1574위트레흐트 동맹 1579

결과80년에 걸친 전쟁 끝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다. 흔히 '80년 전쟁'으로도 불린다.

80년 · 네덜란드 독립, 해상 무역 강국으로 성장
30년전쟁1618 – 1648
신성로마 황제·가톨릭 vs 개신교 제후·스웨덴·프랑스

보헤미아에서 개신교 귀족이 황제의 관리를 창밖으로 던졌다.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종교 갈등에 주변 강대국이 세력 다툼으로 끼어들었다.

백산 1620브라이텐펠트 1631뤼첸 1632로크루아 1643

결과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주권국가 체제가 자리 잡는다.

30년 ·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영국 내전1642 – 1651
의회파 vs 왕당파

찰스 1세가 의회 없이 세금을 걷고 국교회를 강요하자 의회가 군대 통제권을 요구했다. 왕이 노팅엄에서 깃발을 올렸다.

에지힐 1642마스턴무어 1644네이즈비 1645찰스 1세 처형 1649

결과크롬웰의 신형군이 왕당파를 꺾었고 왕은 재판 끝에 참수됐다. 공화정과 호국경 독재를 거쳐 1660년 왕정이 돌아왔지만, 의회 없는 왕은 다시 없었다.

9년 · 국왕 처형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1명

크롬웰장군1649 · 왕의 목을 자른 사람
AD 1599 – AD 1658

시골 젠트리 출신으로 내전에서 철기병을 길러 왕당파를 꺾었다. 왕을 처형했지만 스스로 왕에 가까운 권력을 쥐었다.

  • 찰스 1세 처형 1649 — 유럽 최초의 왕 재판
  • 호국경으로 사실상 독재
  • 아일랜드 원정의 학살은 지금도 상처
파스칼과학1654 · 수학자·철학자
1623 – 1662

도박에서 확률론을 끌어내다

  • 파스칼의 삼각형
  • 확률론의 기초 수립
  • 파스칼의 원리 발견
아우랑제브정치1658 ·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지만 갈등의 씨도 뿌린 황제
1618 – 1707, 재위 1658 – 1707

형제들을 제거하고 아버지 샤 자한을 유폐시킨 뒤 제위에 올랐다. 남인도까지 정복해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으나, 이슬람 정통주의 정책으로 힌두교도와의 갈등을 키워 제국 쇠퇴의 씨앗도 함께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 무굴 제국 최대 영토 달성
  •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지즈야) 부활
  • 사후 제국이 빠르게 분열되기 시작
데카르트과학1637 · 의심에서 다시 시작한 사람
AD 1596 – AD 1650

확실한 것을 찾으려 모든 것을 의심했고, 의심하는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데서 멈췄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해석기하학 — 좌표로 도형을 다룸
  • 「방법서설」을 라틴어 아닌 프랑스어로 씀
루이 14세정치1661 · 태양왕, 절대왕정의 상징
1638 – 1715, 재위 1643 – 1715

재상 없이 직접 통치하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귀족을 곁에 묶어두고 왕권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 베르사유 궁전 건설
  •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상징되는 절대왕정
  • 잦은 전쟁으로 재정을 크게 소모
보일과학1662 · 화학자
1627 – 1691

근대 화학의 문을 열다

  • 보일의 법칙 발표
  • 회의적 화학자 저술
  • 왕립학회 설립에 기여
갈릴레이과학1633 · 눈으로 본 것을 굽히지 않은 사람
AD 1564 – AD 1642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을 봤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증거였고, 그 대가로 여생을 가택 연금으로 보냈다.

  • 목성의 위성 4개 발견 1610
  •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로 종교재판
  • 실험과 수학으로 자연을 설명 — 근대 과학의 방법
샤 자한정치1632 · 타지마할을 지은 황제
1592 – 1666

아내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무덤을 짓기 시작했다. 22년이 걸렸다.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 타지마할 22년 공사
  • 델리에 붉은 성
  • 아들에게 유폐된 채 죽음
구스타브 아돌프장군1631 · 30년전쟁에 뛰어들어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북방의 사자」
1594 – 1632, 재위 1611 – 1632

기동성 있는 보병과 경포병으로 근대 전술을 열었다. 브라이텐펠트에서 이기고 뤼첸에서 이기며 죽었다.

  • 30년전쟁 개입(1630)
  • 브라이텐펠트 승리(1631)
  • 뤼첸 전투 전사(1632)
리슐리외정치1630 · 왕권을 세우고 프랑스를 강국으로 만든 추기경 재상
1585 – 1642

위그노의 요새를 부수고 귀족의 성을 헐었으며, 가톨릭 추기경이면서 개신교 스웨덴에 돈을 대 합스부르크를 견제했다.

  • 루이 13세의 재상(1624–1642)
  • 라로셸 함락(1628), 위그노 정치권 박탈
  • 30년전쟁 개입, 국가이성 외교
하비과학1628 · 피가 순환한다는 것을 밝히다
1578 – 1657

심장이 뿜는 피의 양을 계산해 혈액이 몸을 순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 1628
  • 혈액순환설 확립
  • 생리학의 출발점

그 무렵의 사건

1648
베스트팔렌 조약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지금 국가 체제의 기원이다.
1632
타지마할
아내의 무덤을 짓는 데 22년이 걸렸다.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샤 자한이 짓기 시작했다. 흰 대리석에 페르시아와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섞였다. 그는 말년에 아들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1627
정묘호란
후금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을 문제 삼아 조선을 침공했고,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훗날의 청) 사이에서 실리를 좇는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선은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를 명분 삼아 1627년 후금의 군대가 조선을 침공했다(정묘호란). 후금군은 평안도 일대를 휩쓸며 빠르게 남하했지만, 명과의 전쟁도 함께 치르고 있던 후금 입장에서 조선을 완전히 정복할 여력까지는 없었다. 결국 양측은 조선과 후금이 형제 관계를 맺는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그러나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군신 관계(사대)를 요구하자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10년 뒤 병자호란이 다시 벌어지게 된다.
1688
명예혁명
1688~89년, 잉글랜드 의회가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의 딸 메리와 사위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앉혔다. 유혈 충돌 없이 이뤄졌다.
이듬해 권리장전이 제정되며 의회가 왕권 위에 있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힌다.
1609
망원경과 현미경
네덜란드 안경 장인의 렌즈 두 장이 하늘과 세포를 열었다. 갈릴레이는 목성의 달을, 레이우엔훅은 미생물을 보았다.
1608년 미델뷔르흐의 리페르스헤이가 망원경 특허를 냈고 이듬해 갈릴레이가 20배로 개량해 달의 산과 목성의 위성을 보았다 — 천동설의 근거가 무너졌다. 현미경은 1660년대 훅이 코르크의 「세포」를 이름 붙였고 델프트의 포목상 레이우엔훅이 물방울 속 미생물과 정자를 처음 보았다. 두 기구가 인간의 눈이 닿는 범위를 우주와 미시 세계로 넓혔다.
1608
대동법 시행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던 공납을 쌀·베·동전으로 통일해 걷은 대동법은 100년에 걸쳐 전국으로 확대되며 조세 제도를 크게 바꿨다.
조선 전기의 공납 제도는 각 고을에 정해진 특산물을 바치게 했는데, 생산되지 않는 물품이 배정되거나 상인(방납업자)이 대신 납부하며 폭리를 취하는 등 폐단이 극심했다. 이이 등이 대안으로 수미법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임진왜란 이후 재정이 파탄 나자 광해군 즉위년(1608)에 경기도부터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대동법은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대동미)이나 베, 동전을 걷어 국가가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하도록 했는데, 이는 토지를 많이 가진 지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었다. 지주들의 반발로 확대에 시간이 걸려, 전국 시행까지는 100년이 걸려 숙종 34년(1708)에야 완료되었다. 대동법 시행으로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대는 공인이라는 어용상인이 성장했고, 이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 발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크롬웰

인물 · 1649 · 왕을 죽이고 왕처럼 다스린 사람

시골 젠트리 출신으로 내전에서 철기병을 길러 왕당파를 꺾었다. 왕을 처형했지만 스스로 왕에 가까운 권력을 쥐었다.

【그때 그 자리】 17세기 잉글랜드. 찰스 1세가 의회 없이 11년을 다스리며 마음대로 세금을 걷었다.

1642년 왕과 의회가 갈려 내전이 났다. 크롬웰은 지방 젠트리 출신 의원이었고 군사 경험이 없었다.

【왜 그렇게 됐나】 기병대를 만들었다. 신분이 아니라 신앙과 규율로 뽑았다.

「나는 신사라 부르는 것 말고 아무것도 아닌 자보다, 자기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고 그것을 사랑하는 소박한 갈색 옷의 대장을 택하겠다.」

이 부대가 「철기군」이다. 뒤에 신형군(New Model Army)으로 확대됐다 — 급료를 제대로 주고 훈련시킨 상비군이다.

1645년 네이즈비에서 왕군을 결정적으로 깼다.

【어떻게 흘렀나】 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를 재판하고 처형했다. 국왕을 법정에 세워 반역죄로 죽인 첫 사례다.

유럽이 충격을 받았다. 왕은 신에게서 권력을 받는다는 왕권신수설이 정면으로 부정된 것이다.

공화국이 섰다. 그러나 의회가 다투자 크롬웰이 군대를 몰고 들어가 해산시켰다. 1653년 호국경이 됐다 — 왕이라 부르지 않을 뿐 왕이었다.

청교도의 나라를 만들려 했다. 극장을 닫고 성탄절 축제를 금하고 술집을 규제했다.

아일랜드 원정은 잔혹했다. 드로이다와 웩스퍼드에서 항복한 수비대와 주민을 죽였다. 아일랜드 인구가 크게 줄었고, 그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래서】 1658년 죽고 아들 리처드가 이었으나 2년을 못 갔다. 1660년 찰스 2세가 돌아오며 왕정이 복고됐다.

크롬웰의 시신이 파헤쳐져 목이 잘리고 웨스트민스터 홀에 20년 넘게 걸렸다.

【남은 것】 그가 죽인 왕의 아들이 돌아왔으니 실패로 보인다. 그러나 되돌아오지 않은 것이 있다.

왕이 의회 없이 세금을 걷을 수 없다는 것, 왕도 법 아래 있다는 것. 1688년 명예혁명에서 그것이 못 박힌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꼽힌다. 자유의 수호자인가 군사 독재자인가 — 지금도 답이 갈린다.

지도에서 보기: 1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파스칼 아우랑제브 데카르트 루이 14세 보일 갈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