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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 종교가 아니라 주권을 국제 질서의 단위로 삼았다. 절대왕정이 상비군과 관료제로 국가를 다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해당 없음
재상 없이 직접 통치하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귀족을 곁에 묶어두고 왕권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근대 화학의 문을 열다
형제들을 제거하고 아버지 샤 자한을 유폐시킨 뒤 제위에 올랐다. 남인도까지 정복해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으나, 이슬람 정통주의 정책으로 힌두교도와의 갈등을 키워 제국 쇠퇴의 씨앗도 함께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박에서 확률론을 끌어내다
시골 젠트리 출신으로 내전에서 철기병을 길러 왕당파를 꺾었다. 왕을 처형했지만 스스로 왕에 가까운 권력을 쥐었다.
오스만이 빈을 두 달째 포위했을 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날개 단 기병을 이끌고 언덕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꼽힌다.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완성하다
확실한 것을 찾으려 모든 것을 의심했고, 의심하는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데서 멈췄다.
하늘과 땅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인물 · 1661 · 짐이 곧 국가다, 72년의 절대왕정
재상 없이 직접 통치하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귀족을 곁에 묶어두고 왕권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그때 그 자리: 1643년 다섯 살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는 1661년 재상 마자랭이 죽자 재상을 새로 두지 않고 직접 통치를 선언했다.
왜 그렇게 됐나: 어린 시절 귀족 반란(프롱드의 난)으로 파리를 떠나 피신해야 했던 경험이 그를 강한 왕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이끌었다는 평가가 있다.
어떻게 흘렀나: 베르사유에 거대한 궁전을 짓고 귀족들을 그곳에 모여 살게 해 지방에서의 독자적 권력 기반을 약화시켰다. 콜베르를 등용해 중상주의 경제 정책을 펴는 한편, 여러 차례의 대외 전쟁(네덜란드 전쟁·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등)으로 영토를 넓히려 했다.
그래서: 재위 말년에는 잦은 전쟁으로 국고가 크게 바닥났고, 이는 다음 세기 프랑스 혁명의 먼 배경이 되기도 했다.
남은 것: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은 실제로 그가 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그의 통치 스타일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표현으로 널리 쓰인다. 베르사유 궁전은 이후 유럽 여러 나라 궁정 건축의 모범이 됐다.
지도에서 보기: 165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보일 아우랑제브 파스칼 크롬웰 얀 3세 소비에스키 라이프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