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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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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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공화정의 위기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카이사르 내전BC 49 – BC 45
카이사르파 vs 폼페이우스·원로원파

원로원이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오라 명했다. 무장을 풀면 기소당할 것이 분명해 그는 루비콘을 건넜다.

파르살루스 BC 48탑수스 BC 46문다 BC 45

결과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를 꺾었다. 공화정이 사실상 끝났다.

4년 · 로마 세계 전역이 전장이 됐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6명

카이사르정치BC 44 · 종신 독재관
BC 100 – BC 44

갈리아를 정복한 군대로 로마를 차지했다. 공화정을 끝냈고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 갈리아 정복
  • 루비콘을 건너 내전에서 승리
  • 율리우스력 도입
클레오파트라정치BC 41 ·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은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BC 69 – BC 30, 재위 BC 51 – BC 30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의 마지막 통치자. 로마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키려 했으나 악티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카이사르와 동맹, 아들 카이사리온
  • 안토니우스와 동방 재편
  • 악티움 패배 후 자결, 이집트의 로마 속주화
폼페이우스장군BC 60 · 카이사르와 맞선 로마의 「위대한」 장군
BC 106 – BC 48

지중해 해적을 석 달 만에 소탕하고 동방을 정복했으나, 삼두정치가 깨진 뒤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에게 졌다.

  • 지중해 해적 소탕(BC 67)
  • 미트리다테스 격파, 시리아·유대 병합
  • 파르살루스 패배 후 이집트에서 암살
아우구스투스정치BC 27 · 초대 황제
BC 63 – AD 14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여기서 시작된다.

  • 악티움 승리로 내전을 끝냄
  • 공화정의 외피를 쓴 원수정 수립
  • 200년 로마 평화의 출발
키케로정치BC 63 · 공화정을 지키려다 죽은 로마 최고의 웅변가
BC 106 – BC 43

카틸리나의 음모를 폭로하고 안토니우스를 탄핵했다. 그의 라틴어 문장은 유럽 산문의 교과서가 됐다.

  • 집정관으로 카틸리나 음모 분쇄(BC 63)
  • 「국가론」「의무론」 등 철학·수사학 저작
  • 안토니우스 비판(필리피카)으로 처형
베르길리우스예술BC 19 · 로마의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시인
BC 70 – BC 19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로 아우구스투스의 새 질서에 신화를 입혔다. 단테는 그를 저승길 안내자로 삼았다.

  • 「아이네이스」 12권
  • 「농경시」「목가」
  • 중세·르네상스 라틴 문학의 표준

그 무렵의 사건

BC 44
카이사르 암살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공화정 회복 대신 제국이 왔다.
공화정 회복을 노린 암살이 오히려 제정을 앞당겼다.
BC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BC 100
옥저와 동예
고조선이 무너진 뒤 함경도·강원도 북부 동해안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라는 작은 나라들이 자리 잡았다. 둘 다 왕이 없이 각 읍락을 우두머리(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는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해 고구려에 공물로 바쳤고, 신랑이 어릴 신부를 미리 데려가 키운 뒤 성인이 되면 정식 혼인하는 민며느리제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동예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가축으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라는 제도와, 매년 10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무천이라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훗날 고구려에 흡수됐다.
BC 100
삼한(마한·진한·변한)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가 자리했다. 이들을 통틀어 삼한이라 부르며, 훗날 각각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해 나갔다.
삼한은 각 소국마다 정치를 맡는 우두머리(신지·읍차 등)와,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따로 있는 제정 분리 사회였다.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는 죄인이 도망쳐 들어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 변한 지역은 철이 풍부해 낙랑·왜 등에 수출했으며, 이 철 생산 기반은 훗날 가야 연맹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카이사르

인물 · BC 44 · 종신 독재관

갈리아를 정복한 군대로 로마를 차지했다. 공화정을 끝냈고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은 자기 성공에 눌려 있었다. 지중해를 정복하자 노예가 쏟아져 들어와 자영농이 무너졌다. 땅을 잃은 농민이 로마로 몰렸고, 대신 군대는 재산이 없는 자원병으로 채워졌다. 이들에게 봉급과 퇴역 후 땅을 주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지휘관이었다. 군대가 나라가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게 된 것이다.

기원전 133년 그라쿠스 형제가 토지 개혁을 시도하다 살해된 뒤로 정치는 폭력으로 풀렸다. 마리우스와 술라의 내전이 있었고 술라는 정적 수천 명의 이름을 명단으로 붙여 죽였다.

【왜 그렇게 됐나】

카이사르는 오래된 귀족 집안이지만 가난한 쪽에서 났다. 마리우스의 조카사위라 술라에게 죽을 뻔했다.

그는 민중파로 갔다. 빚을 내어 검투사 경기와 잔치를 열어 인기를 얻었다. 기원전 60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삼두정치를 맺었다. 군대와 돈과 인기를 세 사람이 나눠 쥐고 원로원을 무력화한 것이다.

기원전 58년부터 8년간 갈리아를 정복했다. 지금의 프랑스 전역이다. 이 원정으로 그는 충성스러운 군단과 막대한 부를 얻었다. 갈리아 전기를 직접 써서 로마에 보냈다. 자기 업적을 자기 문장으로 알린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53년 크라수스가 죽고 폼페이우스가 원로원 편에 서면서 균형이 깨졌다. 원로원이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오라 명령했다.

기원전 49년 1월 그는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인 루비콘강을 군대와 함께 건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강을 무장한 채 건너는 것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었다.

내전은 4년 갔다. 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를 깼고,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왕좌에 앉혔다. 폰토스에서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고 보고했다.

기원전 44년 종신 독재관이 됐다. 개혁을 서둘렀다. 퇴역병에게 땅을 주고, 속주민에게 시민권을 넓히고, 달력을 태양력으로 고쳤다. 이 율리우스력이 1,600년 넘게 쓰인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 회의장에서 60여 명에게 찔려 죽었다. 그중에 그가 아꼈던 브루투스가 있었다.

【그래서】

암살자들은 공화정을 지키려 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다시 내전이 나고 기원전 27년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가 되어 제정이 시작됐다. 공화정을 지키려 한 칼이 공화정을 끝냈다.

【남은 것】

그의 이름이 칭호가 됐다. 로마 황제를 카이사르라 부르고, 그것이 독일어 카이저와 러시아어 차르가 됐다.

7월은 그의 이름 율리우스에서 왔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의 뼈대도 그가 정한 것이다. 2천 년 전 한 사람이 정한 시간표 위에서 오늘 일정을 잡고 있는 셈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클레오파트라 폼페이우스 아우구스투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