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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카이사르 사후 로마를 나눠 가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충돌했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손잡자 옥타비아누스는 이를 '동방에 넘어간 로마인'으로 몰았다.
결과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패해 자결했다. 이듬해 이집트가 속주가 된다.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여기서 시작된다.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로 아우구스투스의 새 질서에 신화를 입혔다. 단테는 그를 저승길 안내자로 삼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의 마지막 통치자. 로마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키려 했으나 악티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갈리아를 정복한 군대로 로마를 차지했다. 공화정을 끝냈고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BC 27 · 초대 황제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됐을 때 로마는 100년째 내전 중이었다. 그라쿠스 형제부터 마리우스와 술라,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까지 계속 피로 정권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공화정의 자유보다 안정을 원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열렸을 때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열여덟 살의 종손 옥타비아누스였다. 아무도 그를 셈에 넣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나】
그는 카이사르의 이름을 썼다. 그것만으로 카이사르의 병사들이 따라왔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2차 삼두정치를 맺고 암살자들을 쫓았다. 기원전 42년 필리피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꺾었다.
그다음이 안토니우스와의 싸움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여기서 무력만 쓰지 않았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려 로마를 이집트에 넘기려 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을 강제로 열어 공개하기까지 했다. 여론을 무기로 쓴 것이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이겼고 이듬해 두 사람이 자살했다.
【어떻게 흘렀나】
이제 그는 카이사르가 저지른 실수를 피해야 했다. 양아버지는 왕처럼 보였기 때문에 죽었다.
기원전 27년 그는 원로원에 모든 권한을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원로원은 도로 그에게 권한을 맡기며 아우구스투스, 곧 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줬다. 그는 왕도 독재관도 아닌 제1시민, 프린켑스라 자칭했다.
형식은 공화정 그대로였다. 집정관을 뽑고 원로원이 열렸다. 다만 군대와 재정과 속주 임명권이 한 사람에게 있었다. 겉을 바꾸지 않고 속만 바꾼 것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큰 발명이다.
실무도 촘촘했다. 상비군을 두고 퇴역병에게 줄 재원을 국가 예산으로 확보했다. 소방대와 경찰을 만들고 인구 조사를 했다. 로마를 벽돌의 도시로 물려받아 대리석의 도시로 남긴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원후 14년 일흔여섯에 죽었다. 41년을 다스렸다. 그 뒤 200년이 팍스 로마나다. 지중해 전역에서 큰 전쟁 없이 사람과 물자가 오갔다.
【남은 것】
8월이 그의 이름 아우구스투스에서 왔다.
그가 다스리던 시기에 유대 지역에서 예수가 태어났다. 로마의 도로와 치안과 그리스어 공용어가 뒷날 기독교가 퍼지는 통로가 됐다.
평가는 두 갈래다. 100년 내전을 끝내고 200년 평화를 만든 사람인가, 공화정을 껍데기만 남기고 1인 지배를 정착시킨 사람인가. 타키투스는 그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가져갔다고 썼다.
안정과 자유를 맞바꾸는 거래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성공한 사례로 지금도 인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