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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해당 없음
몽계필담을 쓴 박학한 관료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신법을 비판하다 여러 번 유배됐다. 시·산문·글씨·그림에 모두 능했고, 황주 유배 시절의 「적벽부」가 대표작이다.
재정난과 군사력 약화를 제도로 풀려 했다. 개혁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그가 물러나자 대부분 폐지됐다.
노르망디 공의 사생아로 태어나 잉글랜드 왕이 됐다. 헤이스팅스 한 번의 전투가 잉글랜드의 지배층과 언어를 통째로 갈았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088 · 관찰한 모든 것을 기록한 사람
몽계필담을 쓴 박학한 관료
【그때 그 자리】
송나라는 인쇄술·화약·나침반 등 여러 기술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 체계적으로 기록한 사람은 드물었다.
【왜 그렇게 됐나】
송나라의 관료로 외교·치수·군사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다가, 말년에 은퇴해 그동안 보고 겪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어떻게 흘렀나】
「몽계필담」에 화석이 옛 생물의 흔적이라는 것, 나침반 바늘이 정확히 남북을 가리키지 않고 약간 치우친다는 것(자기 편각), 지형이 오랜 세월 침식·퇴적으로 변한다는 것 등을 기록했다.
【그래서】
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장인 필승에 대한 기록도 이 책에 남아 있어, 세계 최초의 활자 인쇄에 관한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남은 것】
다룬 주제가 천문·수학·지질·의학·공학까지 걸쳐 있어, 후대 학자들은 그를 중국 과학사에서 보기 드문 박학다식한 인물로 꼽는다. 중국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은 그를 「중국 과학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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