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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동로마가 서방에 원군을 청했고, 교황이 성지 회복과 교회 통합을 내걸어 이를 대규모 원정으로 키웠다.
결과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십자군 국가들을 세웠다. 지중해 동안에 200년간 라틴 세력이 남는다.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몽계필담을 쓴 박학한 관료
신법을 비판하다 여러 번 유배됐다. 시·산문·글씨·그림에 모두 능했고, 황주 유배 시절의 「적벽부」가 대표작이다.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재정난과 군사력 약화를 제도로 풀려 했다. 개혁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그가 물러나자 대부분 폐지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095 · 한 번의 설교가 200년 전쟁이 됐다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그때 그 자리】 11세기 말이다. 1054년 동방 정교회와 서방 가톨릭이 갈라섰다.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셀주크 튀르크가 비잔티움군을 크게 깨고 소아시아를 차지했다.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서방에 용병을 요청했다. 튀르크를 밀어낼 병력을 보내 달라는 실무적인 요청이었다.
서방에서는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서임권 투쟁). 교황의 권위를 세울 일이 필요했다.
【왜 그렇게 됐나】 1095년 11월 27일 클레르몽 공의회다.
야외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들판에서 연설했다.
그 내용의 기록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서로 다르다. 모두 사건 뒤에 쓰였다.
공통으로 나오는 것은 이렇다 — 동방의 형제들이 고통받고 있다, 성지가 이교도의 손에 있다, 가는 자의 죄를 사한다.
그리고 군중이 외쳤다고 한다.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Deus vult).」
【어떻게 흘렀나】 예상보다 훨씬 커졌다.
기사들만이 아니라 농민과 여자와 아이까지 나섰다. 정식 원정대보다 먼저 출발한 「민중 십자군」은 도중에 라인란트에서 유대인 공동체를 학살하고, 소아시아에서 거의 전멸했다.
1099년 예루살렘이 함락됐다. 사흘간 학살이 있었다.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이 함께 죽었다.
우르바노는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2주 전에 죽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갔는가에 대한 설명이 여럿이다.
죄 사함이 컸다는 것, 장남이 아닌 기사들에게 땅을 얻을 기회였다는 것, 유럽 안의 폭력을 밖으로 돌린 것이라는 것.
「봉건 유럽의 잉여 폭력을 수출한 사업」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남은 것】 십자군은 200년을 갔고 결국 성지를 잃었다.
얻은 것이 있기는 했다. 지중해 교역이 늘어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커졌고, 이슬람 세계의 학문이 유럽으로 들어왔다.
잃은 것이 더 컸다. 1204년 4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대신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했다. 동서 교회의 골이 되돌릴 수 없게 됐고, 비잔티움이 회복하지 못하고 1453년 무너진다.
2000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십자군을 포함한 교회의 과거 잘못에 대해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