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야바르만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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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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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봉건 유럽과 십자군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한반도

고려 전기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수리야바르만 2세정치1120 · 앙코르 와트를 지은 왕
1113 – 1150 재위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 앙코르 와트
  • 회랑 800미터에 새긴 힌두 신화
  • 크메르 최대 판도
우르바노 2세사상1095 · 한 번의 연설로 200년을 움직인 교황
AD 1035 – AD 1099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 클레르몽 연설 1095 — 십자군의 시작
  • 동서 교회 화해를 노렸으나 골만 깊어짐
  • 예루살렘 함락 소식을 듣지 못하고 사망

그 무렵의 사건

1126
이자겸의 난
고려 왕실과 겹사돈을 맺어 최고 권력을 누리던 외척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은 두 딸을 예종과 인종에게 각각 시집보내며 왕실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라는 이중의 위치로 권력을 독점했다. 인종이 그의 권력을 견제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불태우기까지 했다(1126년). 그러나 이자겸과 척준경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서 결국 척준경이 이자겸을 배신해 제거했고, 반란은 진압됐다. 이 사건은 고려 중기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며 곧이어 벌어질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배경이 됐다.
1113
앙코르의 물길
사람이 판 저수지 하나가 길이 8킬로미터였다.
우기에 넘치고 건기에 마르는 땅을 저수지와 수로로 다스렸다. 1년에 두세 번 벼를 거뒀고 그 잉여가 사원을 지었다. 도시 면적이 1,000제곱킬로미터로 산업화 이전 세계 최대였다는 평가가 있다. 15세기에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 오며 그 수로가 무너졌다.
1107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여진족이 세력을 키워 국경을 위협하자, 윤관은 특수 부대 별무반을 창설해 이들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여진족과의 첫 전투에서 고려의 기존 군대가 기병 중심인 여진족에 고전하자, 윤관은 기병·보병·승병을 아우르는 특수 부대 별무반을 조직해 재정비했다. 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족을 북방으로 몰아낸 뒤, 그 자리에 9개의 성(동북 9성)을 쌓아 새 영토로 편입했다(1107년). 그러나 이 지역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과 여진의 거센 반환 요구 등을 고려해, 고려는 몇 년 뒤 이 땅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철수했다.
1135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승려 묘청은 개경의 지덕이 다했다며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다.
이자겸의 난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묘청은 풍수지리를 내세워 개경 대신 서경으로 천도하면 나라가 다시 융성하고 금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경의 문벌 귀족들(김부식 등)이 이 주장에 강하게 반대해 천도가 무산되자, 묘청은 서경에서 '대위국'을 세우고 반란을 일으켰다(1135년).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1년 만에 반란을 진압했다. 이 사건은 자주적 대외 노선과 사대적 노선, 서경 세력과 개경 세력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 사건으로 자주 거론된다.
1150
앙코르 문명
저수지와 수로로 백만 명을 먹인 동남아시아 최대의 도시 문명이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를 「전 우주의 지배자」로 선포하며 시작됐다. 거대한 저수지(바라이)와 수로망으로 논에 물을 대 인구를 지탱했다 — 최근 레이더 측량으로 앙코르와트 주변에 근대 이전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힌두 사원으로 앙코르와트를 세웠고, 훗날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왜 무너졌는지는 여러 설이 겹친다 — 수리 시설 과부하설, 아유타야와의 거듭된 전쟁설, 상좌부 불교로 옮아가며 신왕 이념이 힘을 잃었다는 설, 나이테 연구로 밝혀진 극단적 가뭄과 폭우의 반복이라는 기후설이 나란히 있다. 1431년 아유타야에 함락된 뒤 도읍을 남쪽으로 옮겼지만, 앙코르와트 자체는 승려들이 계속 관리해 완전히 버려진 적은 없다.
1077
카노사의 굴욕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눈 속에서 사흘을 맨발로 서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사죄했다.
주교를 누가 임명하느냐는 서임권 다툼에서 교황은 황제를 파문했고, 제후들이 황제를 버리려 하자 하인리히는 알프스를 넘어 카노사 성 앞에 섰다. 교황은 용서했지만 황제는 곧 힘을 회복해 로마로 쳐들어갔다. 이 사건은 교권이 왕권 위에 선 상징이자, 세속 권력과 교회가 갈라지는 서유럽 특유의 이중 구조를 굳힌 장면이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수리야바르만 2세

인물 · 1120 · 앙코르와트를 세운 왕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그때 그 자리】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 앞선 왕들이 저수지와 수로를 파 놓아 벼를 한 해에 세 번 거뒀다.

물을 다스린 나라였다. 서바라이 저수지는 길이 8km 폭 2km다.

【왜 그렇게 됐나】 방계 왕족으로 태어나 1113년 경쟁자를 죽이고 왕이 됐다. 「코끼리 위에서 적의 머리를 베었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

정통성이 약했다. 그것을 신전으로 메웠다.

【어떻게 흘렀나】 앙코르와트는 30여 년에 걸쳐 지었다. 사암 500만 톤을 4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운하로 날랐다.

가운데 탑이 65m이고 해자를 포함한 넓이가 162헥타르다. 종교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비슈누에게 바쳤다. 그전 왕들은 시바를 섬겼는데 그는 비슈누를 골랐다 — 새 정통성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구조가 우주를 본떴다. 가운데 탑이 메루산, 다섯 탑이 봉우리, 해자가 대양이다.

회랑 벽에 800m 길이의 부조가 있다. 「우유 바다 젓기」 신화와 왕의 행렬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서쪽을 향한다. 힌두 사원은 보통 동쪽을 보는데 이것만 서쪽이다. 서쪽이 죽음의 방향이라 왕의 무덤을 겸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그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1150년쯤 죽었다. 대월(베트남)과 참파 원정에 실패한 뒤였다.

이후 참파의 침입으로 앙코르가 함락됐다가, 자야바르만 7세가 되찾는다.

【남은 것】 15세기에 도읍이 프놈펜으로 옮겨지며 앙코르는 숲에 덮였다. 다만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어서 승려들이 계속 살았다.

1860년 프랑스 박물학자 앙리 무오가 「발견」했다고 알려졌으나, 그전에 온 서양인 기록도 있고 현지인은 늘 알고 있었다.

캄보디아 국기에 앙코르와트가 그려져 있다. 국기에 건축물이 들어간 나라가 드물다.

지도에서 보기: 1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우르바노 2세 이븐 루시드 심괄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