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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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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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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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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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공화정의 위기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2건

켈티베리아·루시타니아 전쟁BC 181 – BC 133
로마 vs 이베리아 부족

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비리아투스의 저항 BC 147누만티아 공성 BC 134

결과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48년 · 로마의 첫 장기 소모전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 – BC 146
로마 vs 카르타고

군사력을 잃고도 카르타고가 상업으로 되살아나자 로마 원로원이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봤다. 카토는 연설마다 카르타고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카르타고 포위 BC 149–146

결과도시가 파괴되고 지도에서 지워졌다.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가 된다.

3년 · 도시가 헐리고 주민 대부분이 노예가 됐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한 무제정치BC 141 · 한을 제국으로 만든 황제
BC 156 – BC 87

54년을 다스리며 흉노를 밀어내고 서역으로 길을 열었다. 유교를 국가의 학문으로 세운 것도 그다.

  • 흉노 원정과 하서 4군 설치
  • 장건을 서역에 보내 실크로드를 엶
  • 유교를 관학으로 — 이후 2,000년의 틀
장건정치BC 138 · 길을 연 사람
BC 164 – BC 114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서역으로 떠났다가 10년을 포로로 지냈다. 탈출해 임무를 마치고 13년 만에 돌아왔다.

  • 13년 만의 귀환 — 서역 36국을 보고
  • 실크로드의 실질적 개척
  • 포도·석류·목숙이 중국에 들어옴
그라쿠스 형제정치BC 133 · 땅을 나누려다 맞아 죽었다
BC 168 – BC 121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 농지법 — 토지 소유 상한을 두려 함
  • 호민관 권한으로 원로원과 충돌
  • 둘 다 정치 폭력에 죽음 — 공화정 몰락의 신호

그 무렵의 사건

BC 146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같은 해에 두 도시가 지워졌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몇 달 뒤 코린토스도 파괴했다. 지중해 서쪽과 동쪽의 마지막 경쟁자가 함께 사라진 해로, 로마의 지중해 지배가 여기서 확정된다.
BC 138
장건의 서역행
한 사람이 길을 열어 실크로드가 됐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장건을 보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동맹은 못 구했지만 서역의 나라들을 보고했고, 그 정보가 실크로드 교역의 시작이 됐다.
BC 100
옥저와 동예
고조선이 무너진 뒤 함경도·강원도 북부 동해안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라는 작은 나라들이 자리 잡았다. 둘 다 왕이 없이 각 읍락을 우두머리(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는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해 고구려에 공물로 바쳤고, 신랑이 어릴 신부를 미리 데려가 키운 뒤 성인이 되면 정식 혼인하는 민며느리제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동예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가축으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라는 제도와, 매년 10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무천이라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훗날 고구려에 흡수됐다.
BC 100
삼한(마한·진한·변한)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가 자리했다. 이들을 통틀어 삼한이라 부르며, 훗날 각각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해 나갔다.
삼한은 각 소국마다 정치를 맡는 우두머리(신지·읍차 등)와,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따로 있는 제정 분리 사회였다.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는 죄인이 도망쳐 들어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 변한 지역은 철이 풍부해 낙랑·왜 등에 수출했으며, 이 철 생산 기반은 훗날 가야 연맹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BC 194
위만조선 성립
연나라 출신 위만이 고조선 준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중국이 전국시대 혼란과 진·한 교체기의 격변을 겪던 시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왔다. 준왕은 그를 믿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자리를 맡겼는데, 위만은 그 병력을 발판 삼아 도읍 왕검성을 기습해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기원전 194년 무렵).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지만, 그 이전 단군·기자 계통과는 다른 새 왕조라는 뜻에서 오늘날 역사학계는 이를 「위만조선」이라 구분해 부른다. 위만조선은 이후 손자 우거왕 대에 이르러 한 무제의 침공으로 멸망했다(기원전 108년).
BC 214
만리장성 연결
진시황이 흉노를 막으려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이어 붙였다. 지금 남은 벽돌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것이다.
몽염 장군이 30만 병력과 죄수로 10년 동안 흙을 다져 쌓았다. 「맹강녀」 전설처럼 수많은 사람이 공사 중 죽었다. 한·북위·수를 거쳐 명나라가 몽골을 막으려 벽돌과 돌로 6천 km를 다시 세운 것이 오늘 관광객이 오르는 바다링이다. 달에서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장성은 국경이라기보다 농경과 유목의 경계 그 자체였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카르타고

나라의 멸망 · BC 146 · 도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렸다고 전한다

이미 두 번 진 뒤 무장해제 상태였는데도 로마는 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다.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를 매 연설 끝에 붙인 카토의 집요함이었다. 3년 포위 끝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도시를 6일간 불태웠고, 생존자 5만은 노예가 됐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9세기 무렵 페니키아인이 지금의 튀니지 해안에 세운 식민도시다. 페니키아는 지중해 동안의 상업 도시들로, 알파벳을 만들어 퍼뜨린 사람들이다.

카르타고는 위치가 좋았다. 지중해가 시칠리아 부근에서 좁아지는데 그 목을 쥐고 있었다. 동서 교역이 이 앞을 지나야 했다.

이 나라는 영토가 아니라 항로로 만들어졌다. 에스파냐의 은광, 아프리카의 금과 상아, 브리튼의 주석을 잇는 무역망을 쥐었다. 통치도 왕이 아니라 상인 귀족이 뽑은 두 명의 수페테스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카르타고의 정치 체제를 훌륭한 예로 언급했을 정도다.

【왜 그렇게 됐나】

로마는 원래 육지 국가였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시칠리아로 눈을 돌리면서 카르타고와 부딪쳤다.

기원전 264년 1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됐다. 로마는 배가 없었다. 좌초한 카르타고 배를 본떠 함대를 만들고, 배를 서로 붙여 육박전을 벌이는 까마귀라는 장치를 달았다. 자기가 잘하는 방식으로 싸울 판을 만든 것이다. 23년을 싸워 로마가 이기고 시칠리아를 얻었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218년 한니발이 2차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출발해 알프스를 넘었다. 코끼리 37마리를 데려갔고 넘는 동안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

이탈리아 안에서 15년을 싸우며 계속 이겼다. 기원전 216년 칸나에에서 그는 중앙을 일부러 뒤로 물러나게 해 로마군을 안으로 끌어들인 뒤 양옆에서 감쌌다. 하루에 로마군 5만에서 7만이 죽었다. 이 포위 전술은 지금도 사관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이기고도 이기지 못했다. 로마의 동맹 도시 대부분이 배신하지 않았고, 로마는 병력을 계속 채워 넣었다. 카르타고 본국은 한니발에게 충분한 지원을 보내지 않았다. 상인 귀족들이 전쟁 확대를 꺼렸다.

스키피오가 에스파냐를 친 뒤 아프리카 본토로 건너갔다. 한니발이 급히 돌아왔고 기원전 202년 자마에서 졌다.

기원전 149년 3차 전쟁이 일어났다. 이미 무장 해제된 상태였는데도 로마가 쳤다. 원로원의 카토는 무슨 연설을 하든 끝에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고 전한다.

기원전 146년 도시가 함락됐다. 열이레 동안 불탔다. 주민 대부분이 죽거나 노예가 됐다.

【그래서】

소금을 뿌려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이 대목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로마는 100년 뒤 같은 자리에 새 도시를 세워 아프리카 속주의 중심으로 삼았다.

【남은 것】

우리가 아는 카르타고는 거의 전부 로마 쪽 기록이다. 이 나라의 문헌은 도시와 함께 사라졌다. 어린아이를 신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도 로마와 그리스 기록에서 왔고, 고고학적 해석이 지금도 갈린다.

승자가 기록을 독점하면 진 쪽이 어떤 나라였는지 알 길이 사라진다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지중해 서쪽 절반을 600년 쥐었던 나라인데, 자기 목소리로 남긴 것이 거의 없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마케도니아 왕국 고조선 마우리아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