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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히스파니아의 은광을 노린 로마가 내륙 부족과 부딪쳤다. 부족들은 정면 대결 대신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다.
결과누만티아는 8개월 포위 끝에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했다. 로마가 「게릴라전」이라는 문제를 처음 만난 전쟁이다.
왜페르세우스 왕이 그리스 도시들과 손잡고 로마의 영향력을 밀어내려 했다.
결과피드나에서 팔랑크스가 지형이 흐트러진 틈에 로마 군단에 부서졌다.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이 끝나고 로마가 동지중해의 주인이 됐다.
해당 없음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BC 168 · 알렉산드로스의 나라가 끝난 날
알렉산드로스의 고향이 로마 군단에 무너졌다. 밀집 창병 팔랑크스는 평지에서 무적이었지만 지형이 흐트러지자 틈이 벌어졌고, 그 틈으로 로마 검병이 들어왔다. 왕국은 넷으로 쪼개졌다가 20년 뒤 속주가 됐다.
【그때 그 자리】 BC 168년 6월 22일이다. 그리스 북부 피드나다.
로마의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와 맞섰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지 155년째다.
【왜 그렇게 됐나】 그전에 두 차례 싸움이 있었다.
필리포스 5세가 2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과 손잡은 것이 시작이었다.
로마가 이겼고, BC 196년 「그리스의 자유」를 선포했다.
코린토스 경기장에서 전령이 그것을 읽자 사람들이 환호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군대를 빼고 돌아갔다. 그때까지는 정말로 물러났다.
페르세우스가 즉위한 뒤 나라를 다시 세우려 했다.
빚을 탕감하고 망명자를 불러들이고 그리스 도시들과 관계를 넓혔다.
무엇을 잘못했다기보다, 힘을 되찾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왕이 로마에 가서 그를 고발했다.
【어떻게 흘렀나】 초반 3년은 로마가 헤맸다.
파울루스가 지휘를 맡고 나서 달라졌다.
피드나에서 마케도니아 방진이 밀고 나왔다.
사리사 창이 벽을 이뤘다. 로마 병사들이 뚫지 못했다.
파울루스가 뒤에 말했다고 전한다. 「내 평생 그렇게 무섭고 끔찍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방진이 고르지 않은 땅을 지나며 틈이 벌어졌다.
로마 병사들이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짧은 검을 든 개인 전투가 되자 긴 창은 쓸모가 없었다.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마케도니아군 2만이 죽었다.
【그래서】 왕국이 사라졌다.
페르세우스가 로마로 끌려가 개선식 행렬에 세워졌다.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넷으로 쪼갰다. 서로 혼인도 교역도 못 하게 했다.
광산 채굴을 금지했다.
20년 뒤 반란이 나자 아예 속주로 만들었다.
【남은 것】 방진의 시대가 끝났다.
필리포스 2세가 만든 뒤 200년 가까이 최강이었다.
정면에서는 뚫을 수 없었으나 옆과 뒤가 약했고, 지형이 고르지 않으면 대열이 흐트러졌다.
로마 군단은 반대였다. 유연했다.
이 대비가 군사사에서 오래 인용된다.
그리고 로마가 달라졌다.
「이기고 물러나는 나라」에서 「이기고 남는 나라」가 됐다.
22년 뒤 코린토스를 지운다.
파울루스가 그리스에서 가져온 것 가운데 페르세우스의 도서관이 있었다.
그것을 아들에게 주었다. 그 아들이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다.
그리스 문화가 그렇게 로마로 들어갔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마우리아 제국 카르타고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