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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왜고조선이 한과 남쪽 진국 사이의 중계 무역을 막고 사신을 살해하자, 흉노와 고조선이 손잡는 것을 우려한 한 무제가 원정을 결정했다.
결과1년의 농성 끝에 지배층 내분으로 왕검성이 함락됐다. 한사군이 설치된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BC 108 · 1년 버틴 왕검성이 안에서 열렸다
한 무제가 수륙 양면으로 쳐들어왔다. 우거왕은 1년을 버텼지만 강화를 주장하는 신하들이 왕을 죽이고 성문을 열었다. 한은 그 자리에 낙랑 등 사군을 두었고, 유민은 남쪽으로 흘러 삼한의 바탕이 됐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10세기 무렵 요령과 한반도 북부에서 비파형 동검이 나온다. 손잡이와 칼날을 따로 만들어 끼우는 방식으로, 중국식 동검과 확연히 다르다. 이 동검이 나오는 범위가 하나의 문화권을 이룬다.
같은 지역에 고인돌이 밀집한다. 한반도에만 4만 기 가까이 있어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다. 수십 톤 덮개돌을 옮기려면 수백 명을 동원할 힘이 필요하다. 이미 사람을 부리는 권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됐나】
중국 기록에 조선이 처음 나오는 것은 기원전 7세기 관자다. 제나라와 교역했다는 대목이다. 기원전 4세기 전국책에는 연나라와 대등하게 다투는 세력으로 나온다. 스스로 왕을 칭했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단군 이야기는 이 사회의 성격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내려온 무리가 곰을 섬기던 집단과 결합하고, 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신하를 데려왔다. 농경 집단과 다른 계통 집단이 합쳐진 과정으로 읽는 것이 통설이다.
【어떻게 흘렀나】
기원전 3세기 연나라 진개의 공격으로 서쪽 땅을 크게 잃었다. 중심이 동쪽으로 밀렸다.
기원전 194년 연에서 온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됐다. 위만은 상투를 틀고 조선옷을 입고 왔다고 기록됐다. 이 시기 고조선은 철기를 받아들이고, 한과 남쪽 진 사이의 중계 무역을 독점해 힘을 키웠다.
그 중계 이익이 화근이었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가 침공했다. 1년을 버텼다. 한의 육군과 수군이 서로 공을 다투다 지휘관이 처형되는 일까지 있었다. 결국 기원전 108년 왕검성이 무너졌는데, 성 안에서 대신들이 우거왕을 죽이고 항복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이 낙랑을 비롯한 군현을 두었다. 낙랑은 313년까지 400년 넘게 존속하며 중국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가 됐다. 이 시기에 한반도 남부에 철기가 퍼지고 삼한이 자란다.
【남은 것】
고조선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는 지금도 논쟁이다. 중심지가 요령이었다가 평양으로 옮겼다는 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처음부터 평양이었다는 설과 계속 요령이었다는 설이 함께 있다. 단군왕검을 기원전 2333년의 실존 인물로 보는가도 갈린다. 학계 다수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제사장이자 정치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로 본다.
확실한 것은 한반도와 만주에 청동기를 바탕으로 한 정치 세력이 기원전 천 년기에 있었고, 그것이 중국 기록에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1392년에 다시 쓰인다.
지도에서 보기: BC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카르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