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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결과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537 · 유스티니아누스가 5년 만에 완공했다.
5년 만에 완공된 돔이 천 년간 세계 최대였다.
【그때 그 자리】
5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니카 반란이 일어났다. 전차 경주 관중의 두 파벌이 손잡고 봉기해 도시의 상당 부분을 태웠다. 그 자리에 있던 성당도 불탔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도망칠 준비를 했다. 황후 테오도라가 말렸다고 전한다. 황제의 자줏빛 옷이 훌륭한 수의가 된다는 말이었다.
반란은 진압됐다. 경기장에서 3만 명이 죽었다.
불탄 자리에 그는 전에 없던 것을 짓기로 했다.
【왜 그렇게 됐나】
설계를 맡은 것은 건축가가 아니었다. 수학자 안테미오스와 이시도로스다.
이유가 있다. 그가 원한 구조가 당시 기술의 한계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각형 위에 원형 돔을 올리는 것이 문제였다. 로마의 판테온은 원통 위에 돔을 올렸다. 사각형 위에 올리려면 네 귀퉁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펜덴티브라는 해법을 썼다. 네 기둥 사이에 삼각형 곡면을 두어 사각형에서 원형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한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5년 10개월 만에 완성했다. 인부 1만 명이 동원됐다.
돔의 지름이 31미터, 바닥에서 높이가 55미터다.
돔 아래쪽에 창을 40개 둘렀다. 빛이 들어와 돔이 벽에 얹힌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대 기록이 하늘에서 사슬로 매달린 것 같다고 적었다.
각지에서 자재를 가져왔다. 이집트의 반암, 그리스의 대리석, 에페소스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이 쓰였다.
완공된 날 유스티니아누스가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558년 지진으로 돔이 무너졌다. 더 높고 가파르게 다시 지었다. 이후 1,400년 넘게 서 있다. 이 지역이 지진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이 건물이 이후 건축을 바꿨다.
동방 정교회 성당의 표준이 됐다. 러시아와 발칸의 성당들이 이 형식을 따랐다.
오스만도 이를 본떴다. 시난이 지은 술레이마니예 모스크와 셀리미예 모스크가 이 구조를 발전시킨 것이다. 정복자가 정복한 건물을 모범으로 삼았다.
1453년 함락 뒤 모스크가 됐다. 메흐메트 2세가 파괴하지 않고 개조했다.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모자이크가 회칠로 덮였다.
회칠이 결과적으로 모자이크를 보존했다. 20세기에 벗겨내자 그림이 상당 부분 남아 있었다.
【남은 것】
1935년 아타튀르크가 박물관으로 바꿨다. 세속 국가를 표방한 공화국의 상징적 조치였다.
2020년 다시 모스크가 됐다. 국제적으로 논란이 컸다.
한 건물이 성당이었다가 모스크였다가 박물관이었다가 다시 모스크가 됐다. 그 변화가 그때그때 누가 이 도시를 쥐었고 그들이 자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준다.
안에 들어가면 예수를 안은 성모 모자이크 아래에 알라와 무함마드의 이름이 적힌 원판이 걸려 있다. 두 종교의 표지가 한 공간에 있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백제가 불교를 전하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신라 법흥왕의 불교 공인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정복 관산성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