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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527 ·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 공인
신라 왕실은 왕권 강화를 위해 불교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토착 신앙을 지지하는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젊은 신하 이차돈은 자신을 처형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했는데, 실제로 목을 베자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설화가 전한다(527년). 이 사건을 계기로 귀족들의 반대가 누그러지며 불교가 공인됐다. 법흥왕은 이어 율령을 반포하고 관등제를 정비하는 등 신라를 고대 국가 체제로 끌어올렸다.
527년, 신라 법흥왕은 귀족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나라의 공인 종교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젊은 신하 이차돈이 목숨을 바친 순교 설화가 전한다.
신라 왕실은 불교를 통해 왕을 초월적 권위로 뒷받침하고 흩어진 부족 신앙을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 그러나 전통 신앙을 지지하는 귀족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쉽게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이차돈이라는 젊은 신하가 자신을 처형하면 반드시 이적이 일어날 것이라 왕에게 아뢰고 스스로 순교를 자청했다고 전한다. 그의 목을 베자 붉은 피 대신 흰 젖 같은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컴컴해지며 꽃비가 내렸다는 설화가 「삼국유사」 등에 전한다. 이 기이한 일을 계기로 귀족들의 반대가 누그러지며 마침내 불교가 공인됐다.
법흥왕은 이어 율령을 반포하고 관등제와 공복 제도를 정비하는 등, 불교 공인과 함께 신라를 한 단계 끌어올린 고대국가 체제로 다져나갔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하기아 소피아 백제가 불교를 전하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신라, 우산국 복속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