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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서쪽에는 프랑크·서고트·동고트 왕국이 들어섰고 동쪽 로마만 제국으로 남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영토를 되찾으려 했지만 역병과 재정 파탄이 뒤따랐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을 옛 경계로 되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반달·동고트 왕국의 내분이 개입의 빌미가 됐다.
결과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았지만 20년 전쟁과 역병으로 국력만 소진했다.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하기아 소피아를 세웠다. 옛 영토를 되찾으려다 국력을 소진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554 · 한강 유역을 신라에 빼앗긴 데 분노한 백제 성왕이 신라를 공격했다가, 관산성에서 매복에 걸려 전사했다.
성왕은 신라와 동맹해 한강 유역을 고구려로부터 되찾았으나, 곧이어 신라 진흥왕이 동맹을 깨고 그 땅을 독차지해버렸다. 격분한 성왕은 신라를 정벌하려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이 패배로 백제는 오랫동안 국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백제와 신라의 오랜 동맹(나제동맹) 관계도 완전히 끝났다.
554년, 신라에 배신당해 한강 유역을 빼앗긴 백제 성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했다가 관산성에서 목숨을 잃었다.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손잡고 고구려로부터 한강 유역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흥왕은 곧 동맹을 깨고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까지 기습적으로 빼앗아버렸다. 한강 유역은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서해 뱃길을 확보해주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이는 백제로서는 참을 수 없는 배신이었다.
격분한 성왕은 태자(훗날 위덕왕)와 함께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직접 출정했다. 그러나 관산성 인근에서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사로잡혔고, 결국 처형당했다. 이 전투에서 백제군 3만 명 가까이가 전멸했다고 전한다.
이 참패로 백제는 오랫동안 국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또한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에 맞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동맹(나제동맹)도 이 사건으로 완전히 끝나, 이후 삼국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새로운 대립 구도로 접어들게 된다.
지도에서 보기: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신라 진흥왕의 한강 유역 정복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백제가 불교를 전하다 하기아 소피아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신라 법흥왕의 불교 공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