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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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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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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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폴리스의 성립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춘추시대의 패권 다툼BC 770 – BC 476
제·진·초·오·월 등 제후국

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성복 BC 632필 BC 597취리 BC 506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294년 · 170국이 십여 국으로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7명

손자장군BC 510 · 「손자병법」을 남긴 병법가
BC 6세기 말(전승)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2,500년 전 열세 편의 병법이 오늘날 경영과 스포츠에서도 읽힌다.

  • 「손자병법」 13편
  • 오나라 합려를 도와 초를 격파(전승)
  • 지피지기 백전불태
공자사상BC 500 · 무너진 질서를 다시 묻다
BC 551 – BC 479

춘추의 혼란 속에서 신분이 아니라 배움으로 사람을 평가하자고 가르쳤다. 살아서는 쓰이지 못하고 14년을 떠돌았다.

  • 신분에 상관없이 제자를 받음
  • 인(仁)과 예(禮)로 정치를 설명
  • 「논어」 — 2,500년 동아시아의 교과서
다리우스 1세정치BC 500 · 제국을 행정으로 묶은 왕
BC 550 – BC 486

정복보다 관리로 더 큰 일을 했다. 20개 사트라피로 나누고 감찰관을 돌려 총독을 감시했다.

  • 왕의 길 2,700km와 역참 제도
  • 최초의 금화 다릭 — 제국 통화
  • 그리스 원정 실패 — 마라톤 BC 490
노자사상BC 520 · 「도덕경」의 저자로 전하는 도가의 시조
BC 6세기 무렵(전승)

무위자연 — 억지로 하지 않아야 오히려 잘 된다는 역설을 5천 자에 담았다. 유교와 함께 중국 사상의 두 기둥이 됐다.

  • 「도덕경」 5천 자, 도가 사상의 뿌리
  • 무위(無爲)와 자연의 정치철학
  • 후대 도교에서 신격화됨
마하비라사상BC 527 · 자이나교를 세운 사람
BC 599 무렵 – BC 527 무렵

부처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브라만의 권위를 부정했다. 어떤 생명도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을 끝까지 밀고 갔다.

  • 아힘사 — 해치지 않음
  • 2,500년 뒤 간디가 이것을 무기로 삼는다
싯다르타사상BC 528 · 부처
BC 563 무렵 – BC 483 무렵

석가족 왕자로 나 스물아홉에 집을 나섰다. 극단적인 고행도 답이 아니라고 보고 가운데 길을 택했다. 그가 말한 것은 신이 아니라 원인이었다.

  • 네 가지 진리와 연기
  •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제자를 받음
  • 사르나트에서 첫 설법
피타고라스과학BC 530 · 공동체를 이끈 수학자
BC 570 무렵 – BC 495 무렵

숫자가 만물의 근원이라 믿은 사람

  • 직각삼각형 정리를 증명
  • 수와 음악의 조화를 발견
  • 무리수의 발견으로 믿음이 흔들림

그 무렵의 사건

BC 509
로마 공화정 수립
왕을 쫓아내고 두 명의 집정관을 뒀다.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하고 1년 임기의 집정관 둘을 뽑았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리지 않게 나누고 임기를 두는 발상 — 견제와 균형의 원형이 여기서 나왔다.
BC 508
아테네 민주정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으로 시민이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추첨과 투표로 공직을 채우는 실험이 시작됐다. 2,500년 뒤 세계의 표준이 된다.
BC 500
반투의 확산
쇠와 농사를 들고 대륙 절반으로 퍼졌다.
나이지리아·카메룬 경계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2,000년에 걸쳐 남쪽과 동쪽 끝까지 갔다. 얌과 바나나와 철이 함께 움직였다. 오늘 아프리카 남반부의 언어 대부분이 이 한 갈래에서 나온다.
BC 500
북미의 흙무덤
오하이오 강가에 짐승 모양의 언덕이 있다.
아데나와 호프웰이 무덤과 의례를 위해 거대한 흙둔덕을 쌓았다. 뱀 모양 둔덕은 길이가 400미터가 넘는다. 멕시코만 조개와 로키산맥 흑요석이 함께 나와, 대륙을 가로지르는 교역망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BC 528
석가의 깨달음
왕자가 고통의 원인을 묻고 답을 냈다.
생로병사를 보고 출가한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고통은 집착에서 오고 집착을 놓으면 벗어난다는 가르침이 인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퍼진다.
BC 490
마라톤 전투
아테네 중장보병이 페르시아 상륙군을 바다로 몰아냈다. 승전 소식을 전하러 달린 이야기가 마라톤이 됐다.
다리우스 1세가 이오니아 반란을 도운 아테네를 벌하려 보낸 원정군이 마라톤 평원에 상륙했다. 밀티아데스는 스파르타의 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양익을 두텁게 한 대형으로 돌격했다. 그리스군 192명, 페르시아군 6,400명이 죽었다고 헤로도토스는 적었다. 페이디피데스가 아테네까지 달려 「이겼다」고 외치고 죽었다는 전설은 후대의 것이지만 1896년 첫 올림픽 마라톤이 여기서 나왔다.

교역로

해당 없음

로마 공화정 수립

사건 · BC 509 · 왕을 쫓아낸 뒤 만든 장치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하고 1년 임기의 집정관 둘을 뽑았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리지 않게 나누고 임기를 두는 발상 — 견제와 균형의 원형이 여기서 나왔다.

【그때 그 자리】 로마는 처음 250년 동안 왕이 다스렸다. 일곱 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마지막이 「오만한 타르퀴니우스」다. 에트루리아 계통으로, 원로원과 상의하지 않고 다스렸다.

【왜 그렇게 됐나】 BC 509년, 그의 아들 섹스투스가 귀족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했다.

루크레티아가 아버지와 남편을 불러 사실을 말하고 복수를 맹세하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브루투스가 그 칼을 뽑아 들고 사람들을 모았다. 왕가가 추방됐다.

리비우스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뒤에 여러 번 그려지고 쓰였다. 다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떻게 흘렀나】 로마인들이 왕을 두려워하게 됐다. 그래서 만든 장치들이 공화정의 뼈대가 된다.

첫째, 최고 권력을 둘로 나눴다. 집정관(콘술) 두 명이 같은 권한을 갖고, 서로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었다.

둘째, 임기를 1년으로 했다. 물러난 뒤 곧바로 다시 할 수 없었다.

셋째, 비상시에만 독재관을 두되 6개월로 제한했다.

「렉스(왕)」라는 말 자체가 금기가 됐다. 500년 뒤 카이사르가 왕관을 거절하는 연기를 해야 했던 이유다.

【그래서】 곧 다른 싸움이 이어졌다. 귀족(파트리키)과 평민(플레브스)의 갈등이다.

평민이 무기를 들고 도시 밖 언덕으로 나가 버렸다. 「성산 사건」이다. 군대의 대부분이 평민이었으므로 도시가 마비됐다.

협상 끝에 호민관(트리부누스 플레비스)이 생겼다. 평민이 뽑고, 원로원과 집정관의 결정을 한 마디로 막을 수 있으며, 몸이 신성불가침이었다.

BC 450년 무렵 12표법이 청동판에 새겨져 공개됐다. 법을 귀족만 알던 상태가 끝났다.

【남은 것】 「SPQR — 원로원과 로마 인민」이라는 문구가 이때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로마시의 맨홀 뚜껑에 새겨져 있다.

권력을 나누고, 임기를 정하고, 서로 견제하게 하는 구조 — 이것이 뒤에 여러 나라의 헌법으로 이어졌다.

미국 건국자들이 특히 이 모델을 참조했다. 상원(Senate)이라는 이름부터 원로원(Senatus)에서 왔다.

공화정은 500년을 갔다. 그리고 그것을 무너뜨린 것은 왕이 아니라, 군대를 사병처럼 거느린 장군들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BC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아테네 민주정 반투의 확산 북미의 흙무덤 석가의 깨달음 마라톤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