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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왜소아시아의 그리스계 도시들이 페르시아 지배에 반란을 일으켰고 아테네가 이를 도왔다. 다리우스가 보복에 나서면서 전쟁이 그리스 본토로 번졌다.
결과마라톤과 살라미스에서 그리스가 막아냈다. 유럽이 스스로를 페르시아와 구분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춘추의 혼란 속에서 신분이 아니라 배움으로 사람을 평가하자고 가르쳤다. 살아서는 쓰이지 못하고 14년을 떠돌았다.
정복보다 관리로 더 큰 일을 했다. 20개 사트라피로 나누고 감찰관을 돌려 총독을 감시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2,500년 전 열세 편의 병법이 오늘날 경영과 스포츠에서도 읽힌다.
무위자연 — 억지로 하지 않아야 오히려 잘 된다는 역설을 5천 자에 담았다. 유교와 함께 중국 사상의 두 기둥이 됐다.
「와서 가져가라」— 페르시아 대군 앞에서 사흘을 버틴 그의 죽음은 그리스 저항의 상징이 됐다.
은광 수입으로 배를 만들자고 설득해 아테네를 해양 강국으로 바꿨고, 좁은 해협으로 페르시아 함대를 끌어들여 이겼다.
헬레스폰토스에 배다리를 놓고 수십만 대군을 건네 아테네를 불태웠으나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이에서 졌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사건 · BC 500 · 3,000년에 걸친 이동
나이지리아·카메룬 경계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2,000년에 걸쳐 남쪽과 동쪽 끝까지 갔다. 얌과 바나나와 철이 함께 움직였다. 오늘 아프리카 남반부의 언어 대부분이 이 한 갈래에서 나온다.
【그때 그 자리】 BC 1000년 무렵부터다. 시작점은 지금의 나이지리아 동남부와 카메룬 서부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남쪽과 동쪽으로 퍼져 나갔다.
3,000년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 가까이에 도달했다.
【왜 그렇게 됐나】 「반투」는 종족 이름이 아니다.
언어학 용어다. 「사람들」을 뜻하는 낱말이 이 계통 언어에서 대개 「반투」에 가깝게 나타난다.
니제르-콩고 어족의 한 갈래로, 500개가 넘는 언어를 포함한다.
스와힐리어·줄루어·코사어·쇼나어·링갈라어가 여기 속한다.
화자가 3억 5천만 명이 넘는다.
【어떻게 흘렀나】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농사다. 얌과 기름야자를 길렀다.
그리고 철이다. 철제 도구로 숲을 개간할 수 있었다.
인구가 늘고, 늘어난 인구가 새 땅을 찾아 움직였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작물이 결정적이었다는 연구가 있다.
바나나와 타로다. 오스트로네시아 사람들이 마다가스카르로 오면서 함께 왔다.
바나나는 열대 우림에서 잘 자란다. 얌보다 수확이 많다.
그것이 콩고 분지를 지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경로는 둘로 본다. 서쪽으로 콩고 분지를 지나 남하한 갈래, 그리고 동쪽으로 대호수 지역을 돌아 남하한 갈래다.
【그래서】 원래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중부 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집단, 남부의 코이산 계통이다.
그 관계가 단순하지 않았다.
밀려난 곳도 있고, 섞인 곳도 있고, 나란히 산 곳도 있다.
코사어와 줄루어에 흡착음이 있다. 코이산 언어의 특징이다. 접촉의 흔적이다.
AD 300년 무렵 남아프리카에 도달했다.
【남은 것】 이 확산이 오래 「침입」으로 서술됐다.
20세기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그것을 이용했다.
「반투족도 백인과 비슷한 시기에 남쪽으로 왔으니 원주민이 아니다」는 논리다.
고고학이 그것을 반박했다. 반투계 사람들은 유럽인보다 1,000년 이상 앞서 그곳에 있었다.
「반투」라는 말 자체가 남아프리카에서 오래 모욕적으로 쓰였다. 정권이 흑인을 가리키는 행정 용어로 썼기 때문이다.
지금 학술 용어로는 언어 계통을 가리키는 데 쓴다.
짐바브웨의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이 이 계통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유럽 학자들이 오래 그것을 부정했다.
지도에서 보기: BC 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북미의 흙무덤 아테네 민주정 로마 공화정 수립 마라톤 전투 석가의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