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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다키아 왕 데케발루스가 도나우 남쪽을 위협하며 로마에서 조공을 받아냈다. 트라야누스는 이 굴욕과 다키아의 금광을 동시에 겨냥했다.
결과다키아가 속주가 됐다.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가 이때다.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100 · 메콩 하구에서 나온 로마 금화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그때 그 자리】 AD 1~7세기다. 지금의 베트남 남부 메콩 삼각주다.
「푸난」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중국 사서에 그 이름으로 나온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국가 형태로 꼽힌다.
항구가 옥에오다.
【왜 그렇게 됐나】 위치가 전부였다.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바닷길이 말레이반도를 돌아 지나갔다.
계절풍이 바뀌기를 기다려야 했다. 몇 달을 머무는 항구가 필요했다.
옥에오가 그 자리였다.
【어떻게 흘렀나】 1940년대 프랑스 고고학자 루이 말르레가 발굴했다.
나온 것이 놀랍다.
로마 금화가 나왔다.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의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조각, 페르시아의 유리, 한나라의 청동 거울이 함께 나왔다.
한 유적에서 지중해와 인도와 중국의 물건이 같이 나온 것이다.
운하가 있었다. 항공 사진으로 90km에 이르는 수로망이 확인됐다.
도시를 잇고 바다로 나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인도화」라는 현상이 이 시기에 시작된다.
동남아시아가 인도의 종교와 문자와 정치 관념을 받아들였다.
산스크리트가 비문에 쓰였다. 왕이 「데바라자(신왕)」를 칭했다.
다만 정복이 아니었다. 인도가 이 지역을 지배한 적이 없다.
상인과 승려와 브라만이 오갔고, 현지 지배층이 자기 권위를 세우려 그것을 골라 받아들였다.
「인도화」라는 말 자체가 일방적이라는 비판이 있어, 지금은 「현지화된 수용」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중국 사서에 푸난 건국 신화가 적혀 있다.
인도에서 온 브라만 카운디냐가 현지의 여왕 소마와 혼인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밖에서 온 남자와 현지의 여자가 만나는 구조인데, 이 유형이 동남아시아 건국 신화에 반복해서 나온다.
【남은 것】 7세기에 첸라에게 밀렸다.
그 뒤 크메르 제국으로 이어진다. 앙코르가 그 후손이다.
옥에오 유적은 지금 베트남 안장성에 있다.
무역로가 뒤에 말라카 해협 쪽으로 옮겨 갔다. 스리위자야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길이 바뀌면 도시가 죽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른 사례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악숨 모체와 나스카 호프웰의 길 채륜과 종이의 발명 콜로세움 완공 베수비오 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