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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다키아 왕 데케발루스가 도나우 남쪽을 위협하며 로마에서 조공을 받아냈다. 트라야누스는 이 굴욕과 다키아의 금광을 동시에 겨냥했다.
결과다키아가 속주가 됐다.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가 이때다.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105 · 채륜과 종이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 조각·헌 어망 등을 재료로 한 새로운 종이 제조법을 정리해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널리 쓰이기 전, 사람들은 무겁고 부피가 큰 대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죽간이나, 가볍지만 지나치게 값비싼 비단에 글을 적어야 했다. 이런 재료의 한계는 기록과 지식의 확산을 크게 제약했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싸고 흔한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해줬다. 다만 이런 종이 제조 기술의 초기 시도는 채륜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는 이를 개량하고 표준화해 널리 보급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 기술은 오랫동안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퍼져나갔다(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에서 사로잡힌 중국인 포로를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이후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며 전 세계로 확산됐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과 정보가 훨씬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져나가는 결정적인 밑바탕이 됐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악숨 모체와 나스카 옥에오와 푸난 호프웰의 길 콜로세움 완공 베수비오 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