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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원정을 명했다. 주석과 곡물, 노예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결과부디카 여왕의 봉기로 런던이 불탔으나 진압됐다. 스코틀랜드 고지는 끝내 넘지 못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국경이 된다.
예술가를 자처한 황제. 어머니를 죽이고 원로원과 척졌으며, 반란이 일자 「예술가 하나가 죽는구나」라며 자결했다.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사건 · 79 · 폼페이가 하루 만에 묻혔다.
폼페이가 통째로 묻혀 고대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보존됐다.
【그때 그 자리】
79년 나폴리만 일대는 로마의 부유한 지역이었다. 화산재가 쌓인 땅이 비옥해 포도와 올리브가 잘 자랐다.
폼페이는 인구 1만에서 2만의 도시였다. 원형극장과 목욕탕과 빵집과 술집이 있었다. 헤르쿨라네움은 더 작고 부유한 휴양지였다.
베수비오는 화산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마지막 분화가 수백 년 전이라 그저 산이었다. 산비탈까지 포도밭이 올라가 있었다.
62년 큰 지진이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 복구 중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경고였는데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됐나】
79년 8월 24일로 오래 알려졌으나, 최근 발굴에서 10월 중순으로 보이는 증거가 나왔다. 가을 과일과 두꺼운 옷의 흔적, 그리고 벽에 적힌 날짜 낙서가 근거다.
정오 무렵 분화가 시작됐다. 기둥 모양의 분연이 33킬로미터 상공까지 치솟았다.
이런 형태의 분화를 지금 플리니식 분화라 부른다. 이 광경을 기록한 소 플리니우스의 이름에서 왔다.
【어떻게 흘렀나】
열여덟 살 소 플리니우스가 삼촌의 집에서 이를 봤다. 삼촌 대 플리니우스는 박물지를 쓴 학자이자 함대 사령관이었다.
삼촌은 배를 몰아 구조하러 갔다가 화산 가스에 질식해 죽었다. 조카는 남아 목격한 것을 뒤에 두 통의 편지로 남겼다.
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산소나무 모양의 구름이 솟았다, 어둠이 방 안의 등불을 끈 것 같지 않고 문 닫힌 방에 등불이 꺼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자기를 두고 도망치라 했고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목격자가 남긴 최초의 화산 분화 상세 기록이다.
첫날 폼페이에 경석과 화산재가 쏟아졌다. 지붕이 무너져 죽은 사람이 많았다. 이때 상당수 주민은 피난했다.
다음 날 새벽 화쇄류가 내려왔다. 섭씨 수백 도의 가스와 재가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산을 타고 흘렀다. 남아 있던 사람들이 이때 죽었다.
헤르쿨라네움은 화쇄류에 20미터 이상 덮였다.
【그래서】
두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1,700년 가까이 잊혔다.
18세기부터 발굴이 시작됐다. 19세기에 피오렐리가 방법을 고안했다. 재 속의 빈 공간에 석고를 부은 것이다. 썩어 없어진 몸이 남긴 빈 자리에서 그 순간의 자세가 나왔다.
개가 목줄에 묶인 채 몸부림치는 형태, 서로를 안은 사람들, 얼굴을 가린 사람이 나왔다.
【남은 것】
이 재앙이 고대 도시의 일상을 통째로 보존했다.
빵집 화덕에서 그날 구운 빵이 나왔다. 벽에 낙서가 남았다. 선거 벽보와 검투사 응원과 연애 고백과 욕설이 적혀 있다. 어떤 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벽이여, 이 많은 낙서를 견디고도 무너지지 않다니 놀랍다.
문헌은 대개 지배층이 남긴다. 이 도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벽에 적었는지를 남겼다.
베수비오는 지금도 활화산이다. 마지막 분화가 1944년이다. 산기슭에 60만 명 이상이 산다.
지도에서 보기: BC 1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콜로세움 완공 악숨 모체와 나스카 옥에오와 푸난 호프웰의 길 채륜과 종이의 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