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유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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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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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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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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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2건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43 – 84
로마 vs 브리튼 부족

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원정을 명했다. 주석과 곡물, 노예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메드웨이 43부디카의 반란 60몬스 그라우피우스 83

결과부디카 여왕의 봉기로 런던이 불탔으나 진압됐다. 스코틀랜드 고지는 끝내 넘지 못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국경이 된다.

41년 · 제국의 서북 한계선
제1차 유대 전쟁66 – 73
로마 vs 유대

총독의 수탈과 성전 금고 압류가 도화선이었다. 로마화를 거부한 열심당이 봉기를 이끌었다.

예루살렘 함락 70마사다 73

결과제2성전이 불탔고 유대인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다. 성전 없는 유대교가 랍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

7년 · 제2성전의 소멸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네로정치64 ·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 박해로 기억되는 황제
37 – 68, 재위 54 – 68

예술가를 자처한 황제. 어머니를 죽이고 원로원과 척졌으며, 반란이 일자 「예술가 하나가 죽는구나」라며 자결했다.

  • 로마 대화재(64)와 기독교도 처형
  •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아) 건설
  • 군단 반란으로 몰락,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종말
바울사상55 · 작은 종파를 세계 종교로 만든 사람
AD 5 – AD 67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 할례 없이도 신자가 될 수 있게 함
  • 세 차례 전도 여행 — 지중해 전역
  • 로마에서 처형
김수로왕정치42 ·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나 금관가야를 세우다
42 – 199(전승)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 구지가 설화 속 건국 시조
  • 금관가야 초기 전성기 이끎
  • 낙동강 하구 철 생산·해상 교역 기반 확립

그 무렵의 사건

79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가 하루 만에 묻혔다.
폼페이가 통째로 묻혀 고대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보존됐다.
80
콜로세움 완공
5만 명을 수용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열렸다. 개막 축제 100일 동안 맹수 9천 마리가 죽었다.
네로의 황금 궁전 연못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가 완성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처형이 무료로 열렸고 황제가 민심을 얻는 장치였다. 지하에는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5세기까지 쓰이다 지진과 채석으로 허물어졌고, 중세엔 성당 건축의 돌 창고였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선다」는 말이 전한다.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100
옥에오와 푸난
메콩 삼각주에서 로마 금화가 나왔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100
호프웰의 길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하이오의 무덤에서 로키산맥 흑요석, 오대호 구리, 멕시코만 상어 이빨, 애팔래치아 운모가 함께 나온다. 나라도 도시도 없었지만 북아메리카 절반을 잇는 교환망이 있었다. 종교 의례가 그 길을 움직였다고 본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제1차 유대 전쟁

전쟁 · 66 ·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교가 바뀌다

총독의 수탈과 성전 금고 압류가 도화선이었다. 로마화를 거부한 열심당이 봉기를 이끌었다. 제2성전이 불탔고 유대인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다. 성전 없는 유대교가 랍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

【그때 그 자리】 AD 66년이다. 유대는 로마의 속주였다.

총독들의 수탈이 심했다. 마지막 총독 플로루스가 성전 금고에서 돈을 꺼내 갔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조롱하듯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가난한 총독을 위한 모금」을 했다. 플로루스가 병사를 풀어 학살했다.

【왜 그렇게 됐나】 더 깊은 문제가 있었다.

유일신 신앙과 황제 숭배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로마는 대개 속주의 종교를 그대로 두었는데, 유대교만은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타협이 있었다. 황제를 위해 제사를 드리되 황제에게 드리지는 않는 방식이다.

봉기가 나자 성전에서 그 제사를 중단했다. 로마와의 관계를 끊는다는 선언이다.

유대인들도 갈렸다. 열심당(젤롯)과 시카리는 무장 투쟁을, 사두개파 귀족과 상당수 바리새파는 타협을 원했다.

【어떻게 흘렀나】 처음에는 이겼다. 시리아 총독이 이끌고 온 군단이 베트호론에서 궤멸했다.

로마가 베스파시아누스를 보냈다. 갈릴래아부터 차례로 눌렀다.

그 사이 로마에서 네로가 죽고 내전이 났다.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어 돌아가고, 아들 티투스가 이었다.

AD 70년 예루살렘 포위다. 유월절이라 순례자가 몰려 있었다.

성 안에서 파벌들이 서로 싸웠다. 한쪽이 다른 쪽의 식량 창고를 태웠다 — 항전 의지를 강제하려는 것이었는데, 굶주림을 앞당겼다.

요세푸스가 그 참상을 적었다. 로마 편으로 넘어간 유대인 장군이다.

8월에 성전이 불탔다. 티투스가 막으려 했다는 요세푸스의 서술은 변호로 보는 견해가 많다.

마지막이 마사다다. 사해 옆 절벽 위 요새에서 960명이 3년을 버텼다.

로마가 흙으로 거대한 경사로를 쌓아 올렸다. 함락 전날 밤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요세푸스가 적었다.

【그래서】 제2성전이 사라졌다.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제사를 지낼 곳이 없어졌다. 제사장 계급의 역할이 끝났다.

그 자리를 랍비가 채웠다. 요하난 벤 자카이가 포위된 성에서 관에 실려 나와 야브네에 학교를 세웠다는 전승이 있다.

회당과 율법 공부가 중심이 됐다. 지금의 유대교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 성전 없이도 이어지는 종교가 된 것이다.

【남은 것】 로마에 티투스 개선문이 서 있다. 성전에서 가져온 일곱 가지 촛대를 메고 가는 행렬이 새겨져 있다.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그 문 아래로 지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 촛대의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의 국장이다.

「유대」라는 이름은 뒤에 지워졌다. 다음 반란 후 로마가 속주 이름을 「시리아 팔라이스티나」로 바꾼다.

지도에서 보기: BC 1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 다키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