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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원정을 명했다. 주석과 곡물, 노예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결과부디카 여왕의 봉기로 런던이 불탔으나 진압됐다. 스코틀랜드 고지는 끝내 넘지 못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국경이 된다.
왜총독의 수탈과 성전 금고 압류가 도화선이었다. 로마화를 거부한 열심당이 봉기를 이끌었다.
결과제2성전이 불탔고 유대인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다. 성전 없는 유대교가 랍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
예술가를 자처한 황제. 어머니를 죽이고 원로원과 척졌으며, 반란이 일자 「예술가 하나가 죽는구나」라며 자결했다.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66 ·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교가 바뀌다
총독의 수탈과 성전 금고 압류가 도화선이었다. 로마화를 거부한 열심당이 봉기를 이끌었다. 제2성전이 불탔고 유대인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다. 성전 없는 유대교가 랍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
【그때 그 자리】 AD 66년이다. 유대는 로마의 속주였다.
총독들의 수탈이 심했다. 마지막 총독 플로루스가 성전 금고에서 돈을 꺼내 갔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조롱하듯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가난한 총독을 위한 모금」을 했다. 플로루스가 병사를 풀어 학살했다.
【왜 그렇게 됐나】 더 깊은 문제가 있었다.
유일신 신앙과 황제 숭배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로마는 대개 속주의 종교를 그대로 두었는데, 유대교만은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타협이 있었다. 황제를 위해 제사를 드리되 황제에게 드리지는 않는 방식이다.
봉기가 나자 성전에서 그 제사를 중단했다. 로마와의 관계를 끊는다는 선언이다.
유대인들도 갈렸다. 열심당(젤롯)과 시카리는 무장 투쟁을, 사두개파 귀족과 상당수 바리새파는 타협을 원했다.
【어떻게 흘렀나】 처음에는 이겼다. 시리아 총독이 이끌고 온 군단이 베트호론에서 궤멸했다.
로마가 베스파시아누스를 보냈다. 갈릴래아부터 차례로 눌렀다.
그 사이 로마에서 네로가 죽고 내전이 났다.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어 돌아가고, 아들 티투스가 이었다.
AD 70년 예루살렘 포위다. 유월절이라 순례자가 몰려 있었다.
성 안에서 파벌들이 서로 싸웠다. 한쪽이 다른 쪽의 식량 창고를 태웠다 — 항전 의지를 강제하려는 것이었는데, 굶주림을 앞당겼다.
요세푸스가 그 참상을 적었다. 로마 편으로 넘어간 유대인 장군이다.
8월에 성전이 불탔다. 티투스가 막으려 했다는 요세푸스의 서술은 변호로 보는 견해가 많다.
마지막이 마사다다. 사해 옆 절벽 위 요새에서 960명이 3년을 버텼다.
로마가 흙으로 거대한 경사로를 쌓아 올렸다. 함락 전날 밤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요세푸스가 적었다.
【그래서】 제2성전이 사라졌다.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제사를 지낼 곳이 없어졌다. 제사장 계급의 역할이 끝났다.
그 자리를 랍비가 채웠다. 요하난 벤 자카이가 포위된 성에서 관에 실려 나와 야브네에 학교를 세웠다는 전승이 있다.
회당과 율법 공부가 중심이 됐다. 지금의 유대교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 성전 없이도 이어지는 종교가 된 것이다.
【남은 것】 로마에 티투스 개선문이 서 있다. 성전에서 가져온 일곱 가지 촛대를 메고 가는 행렬이 새겨져 있다.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그 문 아래로 지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 촛대의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의 국장이다.
「유대」라는 이름은 뒤에 지워졌다. 다음 반란 후 로마가 속주 이름을 「시리아 팔라이스티나」로 바꾼다.
지도에서 보기: BC 1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 다키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