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아 전쟁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다키아 전쟁101 – 106
로마 (트라야누스) vs 다키아

다키아 왕 데케발루스가 도나우 남쪽을 위협하며 로마에서 조공을 받아냈다. 트라야누스는 이 굴욕과 다키아의 금광을 동시에 겨냥했다.

타파에 101사르미제게투사 106

결과다키아가 속주가 됐다.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가 이때다.

두 차례 원정 · 다키아 금광이 로마 재정을 채웠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트라야누스정치110 · 로마를 가장 크게 만든 황제
AD 53 – AD 117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 다키아 정복 — 오늘날 루마니아
  • 제국 최대 판도 달성
  • 빈민 아동 부양 제도 알리멘타
하드리아누스정치122 · 장벽을 쌓고 제국을 순행한 황제
76 – 138, 재위 117 – 138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 하드리아누스 장벽(122)
  • 제국 전역 순행과 속주 정비
  • 판테온 재건, 바르 코크바 반란 진압

그 무렵의 사건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100
옥에오와 푸난
메콩 삼각주에서 로마 금화가 나왔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100
호프웰의 길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하이오의 무덤에서 로키산맥 흑요석, 오대호 구리, 멕시코만 상어 이빨, 애팔래치아 운모가 함께 나온다. 나라도 도시도 없었지만 북아메리카 절반을 잇는 교환망이 있었다. 종교 의례가 그 길을 움직였다고 본다.
105
채륜과 종이의 발명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어망 등을 이용한 종이 제조법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80
콜로세움 완공
5만 명을 수용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열렸다. 개막 축제 100일 동안 맹수 9천 마리가 죽었다.
네로의 황금 궁전 연못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가 완성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처형이 무료로 열렸고 황제가 민심을 얻는 장치였다. 지하에는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5세기까지 쓰이다 지진과 채석으로 허물어졌고, 중세엔 성당 건축의 돌 창고였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선다」는 말이 전한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다키아 전쟁

전쟁 · 101 · 금광을 얻고 기둥에 새기다

다키아 왕 데케발루스가 도나우 남쪽을 위협하며 로마에서 조공을 받아냈다. 트라야누스는 이 굴욕과 다키아의 금광을 동시에 겨냥했다. 다키아가 속주가 됐다.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가 이때다.

【그때 그 자리】 다키아는 지금의 루마니아다. 카르파티아 산맥에 둘러싸인 땅이다.

금과 은이 많이 났다. 그리고 데케발루스라는 유능한 왕이 있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로마가 한 번 졌다. 조약을 맺고 해마다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 사실상 조공이다.

그 돈으로 다키아가 요새를 짓고 기술자를 데려왔다.

【왜 그렇게 됐나】 트라야누스가 즉위하며 그 조약을 뒤집었다.

국고가 비어 있었고, 새 황제에게는 성과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키아가 강해지는 것 자체가 위협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두 차례 원정했다. AD 101~102년, 105~106년이다.

다뉴브강에 다리를 놓았다.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가 설계했다.

길이 1,135m의 석조 교각 다리다. 1,0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 다리로 남았다.

산악전이었다. 다키아의 요새들이 산꼭대기에 있었다.

1차 원정 뒤 데케발루스가 항복했으나, 곧 무기를 다시 모으고 이웃 부족을 끌어들였다.

2차 원정에서 수도 사르미제게투사가 함락됐다. 데케발루스가 쫓기다 스스로 목을 그었다.

그 장면이 로마의 부조에 새겨져 있다. 잘린 머리가 로마로 보내졌다.

【그래서】 노획한 금이 엄청났다.

고대 기록에 금 165톤, 은 330톤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과장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나 막대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 돈으로 로마에서 123일 동안 축제를 열었다. 검투사 1만 명과 짐승 1만 1천 마리가 동원됐다.

트라야누스 포룸과 시장을 지었다.

그리고 기둥을 세웠다.

【남은 것】 트라야누스 원주다. 높이 30m에 부조가 나선으로 감고 올라간다. 펼치면 200m다.

155개 장면에 2,6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전투 장면은 오히려 적다. 대부분이 다리를 놓고 길을 닦고 진지를 세우는 장면이다.

로마군의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 공병이었다.

고고학자들이 로마군의 장비와 축성법을 연구할 때 이 기둥을 기본 자료로 쓴다.

다키아는 로마 속주가 됐고, 165년 뒤 아우렐리아누스가 포기했다.

그 짧은 기간에 라틴어가 자리를 잡았다. 루마니아어가 지금도 로망스어에 속하는 이유다 — 주변이 전부 슬라브어권인데 홀로 남았다.

「루마니아」라는 이름이 「로마」에서 왔다. 국호에 그 기억이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바르 코크바 반란 제1차 유대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