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 코크바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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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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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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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바르 코크바 반란132 – 136
로마 vs 유대

하드리아누스가 예루살렘 자리에 로마식 도시를 세우고 유피테르 신전을 지으려 했다.

베타르 함락 135

결과3년을 버텼으나 진압됐다. 로마는 유대라는 이름을 지우고 시리아 팔라이스티나로 바꿨으며,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을 금했다. 1,800년의 이산이 여기서 굳는다.

4년 · 유대라는 이름이 지워지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5명

장형과학132 · 후한의 천문학자
78 – 139

최초의 지진계를 만들다

  • 지동의 발명 132
  • 혼천의 개량
  • 원주율을 정밀 계산
카니슈카정치130 · 불교를 실크로드에 실은 왕
AD 127 – AD 150 재위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 간다라 미술 — 그리스식 얼굴의 불상
  • 제4차 불경 결집 후원
  •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는 통로를 엶
하드리아누스정치122 · 장벽을 쌓고 제국을 순행한 황제
76 – 138, 재위 117 – 138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 하드리아누스 장벽(122)
  • 제국 전역 순행과 속주 정비
  • 판테온 재건, 바르 코크바 반란 진압
프톨레마이오스과학150 · 천문학자·지리학자
AD 100 무렵 – AD 170 무렵

1400년을 지배한 우주 모형

  • 알마게스트 저술
  • 주전원으로 행성 역행을 설명
  •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의 정설
트라야누스정치110 · 로마를 가장 크게 만든 황제
AD 53 – AD 117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 다키아 정복 — 오늘날 루마니아
  • 제국 최대 판도 달성
  • 빈민 아동 부양 제도 알리멘타

그 무렵의 사건

105
채륜과 종이의 발명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어망 등을 이용한 종이 제조법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100
옥에오와 푸난
메콩 삼각주에서 로마 금화가 나왔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100
호프웰의 길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하이오의 무덤에서 로키산맥 흑요석, 오대호 구리, 멕시코만 상어 이빨, 애팔래치아 운모가 함께 나온다. 나라도 도시도 없었지만 북아메리카 절반을 잇는 교환망이 있었다. 종교 의례가 그 길을 움직였다고 본다.
165
안토니누스 역병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바르 코크바 반란

전쟁 · 132 · 이름이 지워진 전쟁

하드리아누스가 예루살렘 자리에 로마식 도시를 세우고 유피테르 신전을 지으려 했다. 3년을 버텼으나 진압됐다. 로마는 유대라는 이름을 지우고 시리아 팔라이스티나로 바꿨으며,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을 금했다. 1,800년의 이산이 여기서 굳는다.

【그때 그 자리】 AD 132년이다. 제1차 유대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다.

예루살렘은 폐허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 자리에 로마 식민시를 세우기로 했다.

이름을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 했다. 자기 가문 이름 아일리우스와 카피톨리누스 신전에서 딴 것이다.

성전 터에 유피테르 신전을 세우려 했다.

그리고 할례를 금지했다. 거세를 금하는 법을 확대 적용한 것인데, 유대인에게는 신앙의 핵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시몬 바르 코시바가 일어섰다.

당대 최고의 랍비 아키바가 그를 메시아로 선포했다. 민수기의 「야곱에게서 별이 나온다」는 구절을 인용해 「바르 코크바 — 별의 아들」이라 불렀다.

종교 지도자가 무장 지도자를 메시아로 인정한 것이다. 유대교 역사에서 드문 일이다.

【어떻게 흘렀나】 준비가 치밀했다.

무기를 미리 만들었다. 로마에 납품하는 무기를 일부러 불량으로 만들어 반품받은 뒤 감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동굴을 파서 잇고 지하 통로망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수백 개가 발굴됐다.

처음 2년은 성공했다. 예루살렘을 되찾고 독립 국가를 세웠다.

화폐를 찍었다. 로마 화폐 위에 다시 새겨 「이스라엘의 자유 원년」이라 적었다.

그의 이름으로 쓴 편지들이 유대 사막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부하들을 꾸짖는 내용까지 있다 — 문서로 남은 반란 지도자의 직접적인 목소리다.

로마가 브리타니아에서 최고의 장군 율리우스 세베루스를 불러왔다.

정면 전투를 피하고 하나씩 포위해 굶겼다.

AD 135년 베타르가 함락됐다. 바르 코크바가 죽었다.

【그래서】 피해가 엄청났다.

카시우스 디오가 적기를, 마을 985곳이 파괴되고 58만 명이 죽었다고 했다.

로마도 크게 잃었다. 하드리아누스가 원로원에 보낸 보고에서 「나와 군대는 무사하다」는 관례적 문구를 뺐다는 기록이 있다.

제22군단이 이 시기에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로마가 지우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을 금지했다. 1년에 하루, 성전 파괴를 애도하는 날에만 허용했다.

속주 이름을 「유다이아」에서 「시리아 팔라이스티나」로 바꿨다. 유대인의 옛 적인 블레셋에서 딴 이름이다.

랍비 아키바는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죽었다고 전한다.

【남은 것】 유대교가 방향을 바꿨다.

그 뒤 무장 봉기를 하지 않았다. 메시아를 정치적 해방자로 기대하는 흐름도 약해졌다.

탈무드에서 바르 코크바는 「바르 코지바 — 거짓의 아들」로 불린다. 실패한 메시아에 대한 평가다.

20세기 시온주의가 그를 다시 영웅으로 되살렸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논쟁이다.

이 전쟁 뒤 유대인의 이산이 결정적으로 굳어졌고, 1,800년이 지난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다키아 전쟁 마르코만니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