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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원정을 명했다. 주석과 곡물, 노예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결과부디카 여왕의 봉기로 런던이 불탔으나 진압됐다. 스코틀랜드 고지는 끝내 넘지 못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국경이 된다.
구지봉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 여섯 개 중 가장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 금관가야(오늘날 김해)의 왕이 됐다는 건국 설화가 전한다. 낙동강 하구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이끌었다.
농촌 호족 출신으로 곤양에서 왕망군을 깨고 낙양에 도읍했다. 후한 200년의 문을 열었다.
박해자였다가 회심했다. 지중해를 세 번 돌며 이방인에게 문을 열었고, 그의 편지들이 신약의 절반을 차지한다.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예술가를 자처한 황제. 어머니를 죽이고 원로원과 척졌으며, 반란이 일자 「예술가 하나가 죽는구나」라며 자결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43 · 장벽을 쌓고 멈춘 곳
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권위를 세우려 원정을 명했다. 주석과 곡물, 노예가 실질적 목적이었다. 부디카 여왕의 봉기로 런던이 불탔으나 진압됐다. 스코틀랜드 고지는 끝내 넘지 못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국경이 된다.
【그때 그 자리】 BC 55년과 54년 카이사르가 두 번 건너갔다. 정찰에 가까웠고 곧 돌아왔다.
본격적인 정복은 AD 43년 클라우디우스 때다. 4개 군단, 4만 명이 건너갔다.
클라우디우스가 정복의 성과가 필요했다. 절름발이에 말을 더듬어 무시당하던 황제였다.
직접 16일간 건너와 코끼리를 앞세우고 콜체스터에 입성했다.
【왜 그렇게 됐나】 저항이 이어졌다. 카라타쿠스가 8년을 싸우다 붙잡혔다.
로마로 끌려가 처형될 참에 원로원에서 연설했다. 「내가 그대들에게 순순히 넘어갔다면 내 불운도 그대들의 영광도 이름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클라우디우스가 살려 주었다.
AD 60년 부디카의 봉기가 있었다. 이케니족 왕이 죽으며 재산을 절반씩 나누겠다 유언했는데, 로마 관리들이 전부 몰수하고 왕비 부디카를 채찍질하고 두 딸을 겁탈했다.
부디카가 일어서자 여러 부족이 합류했다. 콜체스터·런던·세인트올번스를 불태웠다. 8만 명이 죽었다고 타키투스가 적었다.
총독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가 좁은 골짜기에 진을 치고 맞서 이겼다. 부디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떻게 흘렀나】 북쪽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는 끝내 얻지 못했다.
총독 아그리콜라가 AD 83년 몬스 그라우피우스에서 이겼는데, 유지할 수 없어 물러났다.
장인의 원정을 기록한 타키투스가, 칼레도니아 족장 칼가쿠스의 연설을 적었다. 로마 문헌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제국 비판이다.
「그들은 파괴하고 학살하고 약탈하는 것을 거짓 이름으로 제국이라 부른다. 그리고 폐허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평화라 부른다.」
AD 122년 하드리아누스가 장벽을 쌓았다. 폭 3m, 높이 5m, 길이 118km다.
20년 뒤 더 북쪽에 안토니누스 장벽을 쌓았다가 20년 만에 포기하고 하드리아누스 선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브리타니아는 360년간 로마 속주였다. 도시와 도로와 목욕탕과 빌라가 들어섰다.
410년 로마가 군대를 뺐다. 호노리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 도시들에 「스스로 지키라」고 통보했다.
【남은 것】 로마가 물러나자 도시 생활이 빠르게 무너졌다. 화폐 경제가 사라지고 도로가 방치됐다.
그 자리에 앵글족과 색슨족이 들어왔다. 로마-브리튼계는 서쪽으로 밀렸다 — 웨일스와 콘월이다.
「-체스터」로 끝나는 영국 지명들이 로마 군단 주둔지(카스트라)에서 왔다. 맨체스터·윈체스터·랭커스터가 그렇다.
하드리아누스 장벽은 지금도 상당 부분 서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