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토부르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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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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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2건

로마의 게르마니아 원정BC 12 – 9
로마 vs 게르만 부족

라인강 너머를 속주로 만들려 했다. 20년간 착실히 진행되던 계획이었다.

엘베강 진출 BC 9토이토부르크 숲 AD 9

결과아르미니우스가 로마군 3개 군단 2만을 숲에서 전멸시켰다. 아우구스투스는 「바루스여, 내 군단을 돌려다오」라 외쳤고 로마는 라인강에서 멈췄다 — 유럽이 라틴권과 게르만권으로 갈린 자리다.

21년 · 유럽을 둘로 가른 경계
토이토부르크 숲9
로마 3개 군단 vs 게르만 부족 연합

로마가 라인강 너머 게르마니아를 속주로 만들려 세금과 로마법을 들이밀었다. 로마군에서 자란 게르만 귀족 아르미니우스가 반란을 조직했다.

토이토부르크 숲 AD 9

결과3개 군단이 전멸했다. 로마의 북쪽 경계가 라인강에서 영구히 멈췄다.

사흘 · 로마군 약 2만이 전멸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명

예수사상30 · 가장 많은 사람이 따른 이름
BC 4 – AD 30

갈릴리에서 3년을 가르치다 처형됐다. 남긴 글은 없고 제자들의 기억만 남았는데, 그 기억이 서구 2,000년의 뼈대가 됐다.

  • 산상수훈 — 약한 자가 복이 있다
  • 십자가형과 부활 신앙
  • 연도를 세는 기준이 됨

그 무렵의 사건

30
예수의 처형
로마 속주 유대에서 벌어진 처형이 세계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속주의 처형 하나가 300년 뒤 제국의 국교가 되는 종교의 출발점이 됐다.
BC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BC 44
카이사르 암살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공화정 회복 대신 제국이 왔다.
공화정 회복을 노린 암살이 오히려 제정을 앞당겼다.
79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가 하루 만에 묻혔다.
폼페이가 통째로 묻혀 고대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보존됐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토이토부르크 숲

전쟁 · 9 · 로마 3개 군단 vs 게르만 부족 연합

로마가 라인강 너머 게르마니아를 속주로 만들려 세금과 로마법을 들이밀었다. 로마군에서 자란 게르만 귀족 아르미니우스가 반란을 조직했다. 3개 군단이 전멸했다. 로마의 북쪽 경계가 라인강에서 영구히 멈췄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7년 제정이 시작된 뒤 로마는 계속 넓어졌다. 아우구스투스 때 이베리아와 알프스와 발칸이 정리됐다.

다음이 게르마니아였다. 라인강 동쪽 땅이다. 로마는 엘베강까지 밀어 새 속주를 만들 계획이었다. 기원전 12년부터 원정이 이어져 20년 가까이 진행됐다.

기원후 6년 무렵 이미 상당 부분이 로마의 통제 아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세금을 걷고 로마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됐나】

아르미니우스는 케루스키족 족장의 아들이었다. 어려서 로마에 인질로 갔고, 로마 시민권을 얻고 기사 계급이 됐으며, 보조군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즉 그는 로마의 전술과 조직을 안에서 배운 사람이었다.

게르마니아 총독 바루스는 그를 신뢰했다. 바루스는 시리아에서 총독을 지낸 행정가였고, 게르마니아를 이미 평정된 속주처럼 다뤘다.

기원후 9년 가을 아르미니우스가 먼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알렸다. 바루스가 3개 군단을 이끌고 그쪽으로 향했다.

【어떻게 흘렀나】

경로가 숲과 늪지였다. 폭이 좁고 진창이었다.

로마 군단의 힘은 밀집 대형에 있다. 넓은 평지에서 방패를 맞대고 나아갈 때 강하다. 좁은 숲길에서는 대열이 길게 늘어져 그 힘을 쓸 수 없다.

행렬이 20킬로미터 넘게 늘어졌다. 비가 내려 방패 가죽이 젖고 무거워졌다.

매복이 시작됐다. 사흘간 이어졌다. 아르미니우스는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옆에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3개 군단이 전멸했다. 17, 18, 19군단이다. 병력 2만 안팎이 사라졌다. 바루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에토니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몇 달간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고 문에 머리를 부딪치며 바루스여 내 군단을 돌려 달라고 외쳤다고 적었다.

이 세 군단 번호는 이후 다시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는 보복 원정을 몇 차례 벌여 이기기도 했지만, 결국 라인강을 국경으로 정했다. 게르마니아 정복을 포기한 것이다.

이 선이 유럽을 갈랐다.

라인강 서쪽과 남쪽은 로마화됐다. 라틴어에서 갈라진 말을 쓰고 로마법의 계보 위에 서고 도시가 생겼다. 동쪽은 그러지 않았다.

프랑스어와 에스파냐어와 이탈리아어가 라틴 계열인데 독일어가 게르만 계열인 이유가 여기 있다. 유럽의 언어 경계선이 2천 년 전 숲에서 사흘간 벌어진 일로 정해졌다.

【남은 것】

19세기 독일 통일 운동에서 아르미니우스가 민족 영웅으로 불렸다. 헤르만이라는 독일식 이름이 붙었다. 1875년 거대한 기념상이 세워졌다.

20세기에 이 상징이 나치에게 이용됐다. 그래서 전후 독일에서 한동안 다루기 껄끄러운 주제가 됐다.

전투 장소는 오래 확인되지 않았다. 1987년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금속탐지기로 로마 동전과 투석용 탄환을 찾아내면서 칼크리제 부근이 유력해졌다. 로마 병사의 얼굴 가리개도 나왔다.

장비를 갖춘 정규군이 지형과 정보에서 밀리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오래된 사례다. 그리고 상대를 안에서 배운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도 함께 보여준다.

지도에서 보기: BC 1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로마의 게르마니아 원정 로마의 브리타니아 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