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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자 노동력이 귀해지고 농노제가 흔들렸다. 몽골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오스만과 명이 들어섰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왜일본 남북조의 혼란 속에 쓰시마·이키의 무장 집단이 해마다 고려 해안을 약탈했다. 조운선이 끊기고 해안 고을이 비었다.
결과최무선의 화포가 진포에서 왜선 500척을 태웠고, 이성계가 황산에서 아지발도를 꺾었다. 1419년 이종무가 쓰시마를 쳐서 왜구가 수그러들었다.
튀니스 출신으로 여러 왕조를 섬기며 관료·재판관으로 일했다. 저서 「무깟디마」(역사서설)에서 왕조의 흥망을 유목민의 결속력(아사비야)과 도시 정착 후의 쇠퇴로 설명해, 근대 사회학의 선구로 평가받는다.
중국이 극비로 지키던 화약 제조법을 원나라 상인에게서 알아내 고려에서 처음으로 화약을 만들었다. 화통도감을 세워 각종 화포를 개발하고, 진포 해전에서 화포로 왜구 선단을 궤멸시켰다.
홍건적의 난에서 몸을 일으켜 몽골을 북으로 내쫓았다. 재상제를 없애고 공신 수만 명을 숙청해 황제 독재의 틀을 만들었다.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친 명장. 요동 정벌을 주장했으나 위화도에서 군대가 돌아오면서 처형됐다.
위화도에서 회군해 고려를 대신할 왕조를 세웠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다.
성리학을 세운 신진사대부이면서 고려를 고쳐 쓰자는 쪽에 섰다. 선죽교에서 죽었다. 고려는 석 달 뒤 끝났다.
이성계를 찾아가 새 나라를 함께 그렸다. 한양의 궁궐과 사대문 이름을 유교의 덕목에서 따 지었다. 왕이 아니라 재상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썼다.
칭기즈 칸의 혈통이 아니어서 칸을 칭하지 못하고 사위라 했다. 35년을 정복만 했다. 1402년 오스만의 술탄을 사로잡아, 결과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50년을 더 살았다.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전쟁 · 1376 · 화포가 바꾼 바다
일본 남북조의 혼란 속에 쓰시마·이키의 무장 집단이 해마다 고려 해안을 약탈했다. 조운선이 끊기고 해안 고을이 비었다. 최무선의 화포가 진포에서 왜선 500척을 태웠고, 이성계가 황산에서 아지발도를 꺾었다. 1419년 이종무가 쓰시마를 쳐서 왜구가 수그러들었다.
14세기 중엽 일본이 남북조로 갈라져 싸우는 동안 쓰시마·이키·마쓰우라의 무장 집단이 해마다 고려 해안을 약탈했다. 세곡을 나르는 조운선이 끊기고 해안 고을은 비었다. 1350년부터 40년 동안 침입 기록이 500회가 넘는다.
1376년 최영이 홍산(부여)에서 왜구를 크게 이겼다. 1380년 왜선 500척이 진포(군산)에 들어오자 최무선이 화통도감에서 만든 화포로 배를 모두 태웠다. 배를 잃고 내륙으로 들어간 왜구를 이성계가 황산(남원 운봉)에서 쳤다. 적장 아지발도를 쏘아 죽인 이 싸움이 황산대첩이다.
1383년 정지가 관음포(남해)에서 화포로 다시 왜선을 태웠고, 1389년 박위가 쓰시마를 쳤다. 조선이 서자 세종은 1419년 이종무에게 병선 227척과 1만 7천 군사를 주어 쓰시마를 정벌하게 했다(기해동정).
이후 조선은 쓰시마 도주에게 벼슬을 주고 삼포를 열어 교역을 허락하는 회유책으로 왜구를 다스렸다. 화약 무기를 바다 싸움에 쓴 경험은 임진왜란 때 수군의 바탕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홍건적의 고려 침입 홍건적의 난과 명의 건국 백년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