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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메카 순례로 시작해 인도·중국·아프리카까지 돌았다. 마르코 폴로보다 세 배 멀리 갔다.
마자파힛의 재상으로 군도를 통일하기 전에는 향신료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국가 이념의 뿌리로 그를 든다.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전쟁 · 1337 · 잉글랜드 vs 프랑스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그때 그 자리】
중세 유럽의 왕국은 오늘의 국가와 달랐다. 결혼과 상속으로 영지가 국경을 넘나들었다. 잉글랜드 왕은 1066년 노르망디 공작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래 프랑스 안에도 큰 영지를 갖고 있었다. 프랑스 왕의 신하이면서 잉글랜드의 왕인 이중 신분이었다.
경제도 얽혀 있었다. 플랑드르는 유럽 최대의 모직물 산지였는데 원료인 양모를 잉글랜드에서 사 왔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에 속했다. 잉글랜드는 이 시장을 잃고 싶지 않았다.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가 후사 없이 끊겼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어머니를 통해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다. 프랑스는 여자를 통한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발루아 가문을 세웠다.
【왜 그렇게 됐나】
1337년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를 공식으로 주장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명분은 왕위였고 실질은 영지와 양모 시장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116년간 계속 싸운 것이 아니라, 전투와 휴전이 번갈아 이어졌다.
초반은 잉글랜드가 압도했다. 1346년 크레시, 1356년 푸아티에, 1415년 아쟁쿠르에서 잇달아 이겼다. 이긴 이유가 무기였다. 잉글랜드 장궁은 1분에 열 발 이상을 쏘고 갑옷을 뚫었다. 훈련에 오래 걸려 법으로 일요일마다 활쏘기를 시켰다. 아쟁쿠르에서는 진흙탕에 갇힌 프랑스 기사들이 화살에 무너졌다.
기사의 시대가 여기서 저물었다. 평민 궁수가 귀족 기사를 죽일 수 있게 되자 전쟁의 계급 구조가 흔들렸다.
중간에 흑사병이 왔다. 1348년부터 두 나라 인구가 3분의 1씩 줄어 전쟁이 한동안 멈췄다.
1429년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고 랭스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성사시켰다. 이 뒤로 흐름이 뒤집혔다. 샤를 7세는 상비군을 만들고 대포를 도입했다. 1453년 카스티용에서 프랑스 포병이 잉글랜드군을 부쉈다. 성벽을 지키던 대포가 야전에서 쓰인 것이다.
【그래서】
잉글랜드는 칼레만 남기고 대륙에서 물러났다. 프랑스는 통일된 왕국으로 나아갔다.
두 나라 모두 안이 바뀌었다. 잉글랜드는 전쟁 자금을 얻으려 의회를 자주 열어야 했다. 세금을 승인받는 대가로 의회의 권한이 커졌다. 프랑스는 반대로 상비군과 상시 과세로 왕권이 강해졌다. 같은 전쟁이 한쪽에서는 의회주의를, 다른 쪽에서는 절대왕정을 키웠다.
【남은 것】
이 전쟁이 프랑스인과 잉글랜드인이라는 감각을 만들었다. 그전에는 왕가의 영지 다툼이었다. 116년을 싸우고 나자 사람들이 자기를 나라 단위로 여기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에서는 프랑스어를 쓰던 궁정이 영어로 돌아섰다. 초서가 영어로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것이 이 시기다.
곧이어 잉글랜드는 장미전쟁이라는 내전에 들어간다. 밖에서 싸울 곳을 잃은 귀족들이 안에서 싸운 것이다.
지도에서 보기: 1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겐코의 난 홍건적의 난과 명의 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