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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 종교가 아니라 주권을 국제 질서의 단위로 삼았다. 절대왕정이 상비군과 관료제로 국가를 다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왜오스만이 빈을 두 번째로 포위했다. 유럽 각국이 교황의 중재로 신성동맹을 맺었다.
결과폴란드 기병의 돌격으로 포위가 풀렸고,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이 헝가리를 잃었다. 오스만의 팽창이 여기서 멈추고 이후 200년의 후퇴가 시작된다.
왜오스만이 두 달째 성을 파고들었다. 성벽 아래로 굴을 파 화약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결과9월 12일 소비에스키의 기병 3천이 언덕에서 내려왔다. 오스만이 무너졌고, 이후 유럽에서 물러나기 시작한다. 이 도시가 두 번째로 포위를 견딘 날이다.
오스만이 빈을 두 달째 포위했을 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날개 단 기병을 이끌고 언덕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꼽힌다.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완성하다
하늘과 땅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8세에 즉위해 61년을 다스렸다. 타이완을 얻고 러시아와 국경을 정했으며 서양 선교사에게 수학을 배웠다.
정부는 생명·자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계약이고, 이를 어기면 국민은 저항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은 그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근대 화학의 문을 열다
재상 없이 직접 통치하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귀족을 곁에 묶어두고 왕권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형제들을 제거하고 아버지 샤 자한을 유폐시킨 뒤 제위에 올랐다. 남인도까지 정복해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으나, 이슬람 정통주의 정책으로 힌두교도와의 갈등을 키워 제국 쇠퇴의 씨앗도 함께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전쟁 · 1683 · 오스만이 처음으로 땅을 내준 조약
오스만이 빈을 두 번째로 포위했다. 유럽 각국이 교황의 중재로 신성동맹을 맺었다. 폴란드 기병의 돌격으로 포위가 풀렸고,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이 헝가리를 잃었다. 오스만의 팽창이 여기서 멈추고 이후 200년의 후퇴가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1683년 빈 포위가 실패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교황 인노첸시오 11세가 신성동맹을 조직했다.
오스트리아·폴란드·베네치아가 들어왔고, 1686년 러시아가 합류했다.
유럽이 오스만을 상대로 이렇게 뭉친 것은 처음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그전까지 유럽은 하나가 되지 못했다.
프랑스가 오스만과 오래 손잡고 있었다. 합스부르크를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가장 기독교적인 왕」이라 불린 프랑스 왕이 이슬람 제국과 동맹한 것을 두고 오래 말이 많았다.
이번에도 프랑스는 동맹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에 라인강 쪽으로 나갔다.
그래도 나머지가 움직였다.
【어떻게 흘렀나】 16년이 걸렸다.
1686년 부다가 함락됐다. 145년 만에 헝가리의 옛 수도를 되찾았다.
1687년 2차 모하치에서 오스만군이 무너졌다. 161년 전 같은 자리에서 헝가리가 무너진 곳이다.
베네치아가 그리스로 갔다. 1687년 아테네를 포위하며 파르테논에 포격했다.
오스만이 그곳을 화약고로 쓰고 있었다. 폭발로 신전 가운데가 날아갔다.
2,000년을 거의 온전히 서 있던 건물이 그날 지금의 모습이 됐다.
1697년 젠타에서 사보이 공 외젠이 결정타를 날렸다. 오스만군이 강을 건너는 도중에 쳤다. 술탄이 보는 앞에서 군대가 궤멸했다.
【그래서】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다.
오스만이 헝가리 대부분과 트란실바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그리스 남부를 내놓았다.
오스만 역사에서 처음으로 「패자」로서 조약에 서명한 것이다.
그전까지의 조약은 형식상 술탄이 은혜를 베푸는 형태였다. 이번에는 협상 테이블에서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회의 방식도 유럽식이었다. 원형 탁자에 각국 사절이 둘러앉고 중재자가 있었다.
【남은 것】 오스만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유럽에 상주 대사를 보내고, 군사 기술을 배우려 했다. 「튤립 시대」라 불리는 시기에 인쇄소가 들어오고 프랑스 문물이 유입된다.
그러나 늦었다. 그 뒤 200년 동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게 계속 밀린다.
「유럽의 병자」라는 말이 19세기에 붙는다.
합스부르크는 반대였다. 헝가리를 얻으며 동유럽의 제국이 됐다.
그 다민족 제국이 1918년까지 간다. 그리고 그 안의 민족 문제가 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지도에서 보기: 165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빈 공방 대북방전쟁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 명청 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