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몽골계 유목 제국 준가르 칸국은 오랫동안 청과 중앙아시아 패권을 다퉜다. 준가르 내부의 왕위 계승 다툼을 틈타 청이 대대적인 원정에 나섰다.
결과청은 정복지의 준가르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 인구의 상당수가 죽거나 도주했다는 기록이 있어 현대 학자들은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기도 한다.
왜슐레지엔을 되찾으려는 오스트리아가 오랜 적 프랑스와 손잡으며 외교 관계가 뒤집혔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이미 충돌하고 있었다.
결과유럽·아메리카·인도에서 동시에 벌어진 사실상 최초의 세계대전. 영국이 프랑스를 밀어내고 해양 패권을 잡았다.
왜회사가 나라와 싸웠다. 클라이브의 병력은 3천, 벵골은 5만이었다.
결과실은 싸움보다 매수였다. 벵골 사령관 미르 자파르가 등을 돌렸다. 이 하루로 회사가 벵골의 징세권을 얻었고, 회사가 나라를 다스리는 구조가 여기서 시작된다.
슐레지엔을 빼앗고 7년전쟁에서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버텼다. 플루트를 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국가의 제1 종복」을 자처했다.
생물 분류 체계를 세우다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이 정신이 표현의 자유의 표어가 됐다.
독일 출신 공주로 시집와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34년 재위 동안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그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됐다.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세 차례 항해로 태평양의 해안선을 그렸다. 감귤로 괴혈병을 막아 긴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가 그린 지도가 곧 식민의 지도가 됐다.
독립을 이끌고 왕이 되기를 거절했다. 두 번의 임기 뒤 스스로 물러났다.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탕평으로 붕당을 눌렀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보이지 않는 손」— 각자가 자기 이익을 좇을 때 사회 전체가 부유해진다. 분업과 자유무역을 설명한 이 책이 자본주의의 경전이 됐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썼으면서 노예 600명을 소유했다.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나라를 두 배로 넓혔다.
인쇄공에서 시작해 피뢰침을 발명하고 프랑스를 독립전쟁의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독립선언과 헌법에 모두 서명한 유일한 인물 중 하나다.
분리 응축기로 증기기관의 효율을 세 배 올렸고 회전 운동으로 바꿔 공장과 기차를 움직였다. 힘의 단위 「와트」가 그의 이름이다.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원이면서 씨름하고 서당에서 우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왕에서 사람으로 내려온 순간이다.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가 실제로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적었다.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틀로 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전쟁 · 1756 · 영국·프로이센 vs 프랑스·오스트리아·러시아
슐레지엔을 되찾으려는 오스트리아가 오랜 적 프랑스와 손잡으며 외교 관계가 뒤집혔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이미 충돌하고 있었다. 유럽·아메리카·인도에서 동시에 벌어진 사실상 최초의 세계대전. 영국이 프랑스를 밀어내고 해양 패권을 잡았다.
【그때 그 자리】
18세기 중반 유럽에는 오랜 대립 구도가 있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300년 가까이 적이었다.
그런데 1740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을 빼앗았다. 인구가 많고 산업이 발달한 땅이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려면 프로이센을 고립시켜야 했다.
1756년 외교 혁명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가 오랜 적이던 프랑스와 손잡았다. 그러자 영국이 프로이센과 손잡았다. 동맹이 통째로 뒤집혔다.
【왜 그렇게 됐나】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 밖에서 이미 부딪치고 있었다.
북아메리카에서 오하이오 계곡의 지배권을 두고 충돌했다. 1754년 버지니아 민병대를 이끈 스물두 살의 조지 워싱턴이 프랑스군과 교전한 것이 발단 가운데 하나다.
인도에서는 동인도회사들이 현지 세력과 손잡고 다퉜다.
즉 이 전쟁은 유럽의 영토 분쟁과 식민지 쟁탈이 겹친 것이다. 처칠이 뒷날 이를 최초의 세계대전이라 불렀다.
【어떻게 흘렀나】
유럽에서 프로이센은 사방에 적을 두고 싸웠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 러시아와 스웨덴이다. 인구와 자원에서 압도적으로 밀렸다.
프리드리히 2세는 내선의 이점을 살렸다. 짧은 거리를 빠르게 이동해 적을 하나씩 상대했다. 1757년 로스바흐와 로이텐에서 연달아 이겼다.
그래도 한계에 몰렸다. 1760년 러시아군이 베를린에 들어왔다. 프리드리히는 자살을 생각했다고 편지에 적었다.
1762년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가 죽고 표트르 3세가 즉위했다. 그는 프리드리히를 열렬히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즉시 전쟁에서 빠지고 점령지를 돌려줬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브란덴부르크 왕가의 기적이라 불린다.
밖에서는 영국이 이겼다. 1759년 퀘벡을 함락하고, 인도에서 플라시 전투로 벵골을 장악했다.
【그래서】
1763년 파리 조약과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으로 끝났다.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을 지켰다. 유럽의 다섯 번째 강국으로 인정받았다. 이 위상이 100년 뒤 독일 통일의 바탕이 된다.
영국은 북아메리카의 프랑스령 대부분과 인도의 우위를 얻었다. 세계 제국의 출발점이다.
프랑스는 식민지를 대거 잃고 재정이 파탄 났다.
【남은 것】
이 전쟁의 결과가 곧바로 다음 사건을 낳았다.
영국은 전쟁 부채를 갚으려 식민지에 세금을 매겼다. 인지세법과 차법이다. 그리고 프랑스가 물러났으니 식민지는 더 이상 본국의 보호가 절실하지 않았다. 12년 뒤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된다.
프랑스는 그 독립전쟁을 지원해 영국에 복수했다. 그 비용으로 재정이 완전히 무너져 1789년 혁명을 맞는다.
인도에서는 동인도회사가 벵골의 징세권을 얻어 사실상 영토 지배를 시작한다. 회사가 나라를 다스리는 구조가 여기서 나왔다.
유럽의 왕들이 슐레지엔이라는 땅 하나를 두고 벌인 싸움이, 북아메리카와 인도의 운명을 정하고 두 개의 혁명을 불렀다.
지도에서 보기: 17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청의 준가르 정벌 플라시 전투 마이소르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미국 독립전쟁 마라타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