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절대왕정과 계몽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1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 – 1748
프로이센·프랑스 vs 오스트리아·영국

여성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기습 점령했다.

몰비츠 1741퐁트누아 1745

결과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빼앗으며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8년 · 슐레지엔이 프로이센으로 넘어갔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9명

오일러과학1736 · 수학자
1707 – 1783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 해결
  • 그래프 이론의 시작
  • 현대 수학 표기법 다수 고안
마리아 테레지아정치1745 · 16명의 자녀를 낳고 합스부르크를 지킨 여제
1717 – 1780, 재위 1740 – 1780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제국 수호
  • 의무교육·행정 개혁, 상비군 정비
  • 마리 앙투아네트 등 자녀 정략혼
프리드리히 대왕정치1757 ·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올린 계몽 군주
1712 – 1786, 재위 1740 – 1786

슐레지엔을 빼앗고 7년전쟁에서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버텼다. 플루트를 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국가의 제1 종복」을 자처했다.

  • 슐레지엔 전쟁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영토 탈취
  • 7년전쟁 — 로이텐·로스바흐 승리
  • 고문 폐지, 종교 관용, 감자 보급
바흐예술1723 · 「마태 수난곡」의 작곡가, 음악의 아버지
1685 – 1750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평균율 클라비어」
  • 「마태 수난곡」(1727)
  • 「푸가의 기법」 — 대위법의 완성
린네과학1758 · 식물학자
1707 – 1778

생물 분류 체계를 세우다

  • 이명법 확립
  • 자연의 체계 1758
  • 현대 생물 분류의 기초
건륭제정치1760 · 청의 최대 판도와 쇠퇴의 씨앗을 함께 남긴 황제
1711 – 1799, 재위 1735 – 1796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 십전무공 — 준가르 멸망, 신장 병합(1759)
  • 「사고전서」 편찬과 문자옥
  • 매카트니 사절단 거절(1793)
볼테르사상1760 · 종교적 광신과 싸운 계몽의 상징
1694 – 1778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이 정신이 표현의 자유의 표어가 됐다.

  • 「철학 서한」「캉디드」「관용론」
  • 칼라스 사건 — 억울한 개신교도 명예 회복
  • 바스티유 투옥, 영국·프로이센 망명
예카테리나 대제정치1762 · 러시아를 유럽 열강으로 키운 여제
1729 – 1796, 재위 1762 – 1796

독일 출신 공주로 시집와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34년 재위 동안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 쿠데타로 남편 표트르 3세를 폐위
  • 오스만·폴란드로부터 영토 확장
  • 계몽 군주를 자처했으나 농노제는 오히려 강화
루소사상1762 · 「사회계약론」으로 혁명에 불을 붙인 사상가
1712 – 1778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그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됐다.

  • 「사회계약론」「에밀」(1762)
  • 일반의지·인민주권 사상
  • 「고백록」 — 근대 자서전의 시작

그 무렵의 사건

1750
균역법 시행
영조는 백성이 부담하던 군포를 절반으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해 군역의 폐단을 완화했다.
조선의 양인 남성은 군역 대신 군포(베 2필)를 바쳐야 했는데, 군적이 문란해지면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갓난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매기는 백골징포·황구첨정 같은 폐단이 만연했다. 영조는 1750년 균역법을 시행해 군포 부담을 종전의 절반인 1필로 줄였다. 이로 인해 줄어든 국가 재정은 지주에게 걷는 결작(토지에 매기는 세금)과 어업세·소금세 등 잡세로 메우도록 했다. 균역법은 백성의 부담을 다소 덜어주었지만 근본적인 군적 문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 조선 후기까지 군포 관련 폐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725
영조의 탕평책
영조는 붕당 간 극심한 대립으로 정치가 마비되자,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숙종 때부터 격화된 붕당 간의 당쟁은 상대 당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환국 정치로까지 치달아 정치 기강이 크게 흔들렸다. 이 와중에 왕위에 오른 영조는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도 붕당의 다툼에 시달렸던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이 원칙을 널리 알리고, 붕당의 뿌리인 서원을 대거 정리하며 이조 전랑의 권한도 축소했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극단적인 당쟁은 상당히 진정되었으며, 이 흐름은 손자인 정조에게로 이어져 조선 후기 정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1755
리스본 대지진
만성절 아침 지진·쓰나미·화재가 리스본을 지웠다. 「신은 왜 허락했는가」가 계몽사상의 질문이 됐다.
11월 1일 미사 시간에 규모 8.5로 추정되는 지진이 덮쳤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가로 피하자 쓰나미가 왔고 촛불이 도시를 닷새 동안 태웠다. 인구 20만 중 3만에서 5만이 죽었다. 재상 폼발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를 먹이라」며 격자형 내진 도시를 다시 세웠고, 볼테르는 「캉디드」로 낙관론을 비웃었다. 근대 지진학의 출발점이다.
1769
산업혁명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와 아크라이트의 방적기가 같은 해에 나왔다.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석탄과 철이 풍부한 영국 중부에서 면직물 공장이 강가에서 도시로 옮겨 왔다. 증기기관이 방적기와 직조기를 돌리고 곧 철도를 끌었다. 인구가 농촌에서 맨체스터·버밍엄으로 몰렸고 아동 노동과 슬럼, 그리고 중산층이 함께 생겼다. 이 변화는 100년 안에 유럽과 미국, 일본으로 번져 인류의 생활수준을 처음으로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1776
미국 독립선언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차 세금과 대표 없는 과세에 반발한 식민지는 1775년 렉싱턴에서 총을 들었다. 제퍼슨이 쓴 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됐고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지며 정부가 이를 어기면 갈아치울 수 있다고 했다. 서명자들은 반역죄로 교수형을 각오했다. 8년 전쟁 뒤 독립이 인정됐고, 이 문서는 프랑스 혁명과 이후 모든 독립선언의 본보기가 됐다.
1701
아샨티 제국
1701년 오세이 투투가 세운 아샨티 제국은 금 무역으로 번영하며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했으나, 19세기 말 영국과의 거듭된 전쟁 끝에 식민 지배 아래 놓였다.
건국자 오세이 투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황금 스툴')를 왕권의 상징으로 삼아 여러 부족을 하나의 연합체로 묶었다. 이 의자는 오늘날까지도 아샨티 왕권의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샨티는 풍부한 금광과 노예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으나, 19세기 들어 이권을 노린 영국과 다섯 차례에 걸친 전쟁(영국-아샨티 전쟁)을 치렀다. 1900년 마지막 전쟁에서 패배하며 결국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됐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전쟁 · 1740 ·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시작된 전쟁

여성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기습 점령했다.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빼앗으며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그때 그 자리】 1740년 신성로마 황제 카를 6세가 죽었다. 아들이 없었다.

생전에 오래 준비했다. 「국사조칙」을 만들어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영토를 물려받도록 정했다.

유럽 각국에게 그것을 인정받으려 20년을 매달렸다. 영토와 특권을 내주며 서명을 받았다.

그가 죽자 서명이 종잇조각이 됐다.

【왜 그렇게 됐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한 지 다섯 달째였다.

스물여덟이었고, 아버지가 남긴 훈련된 군대와 국고가 있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슐레지엔으로 들어갔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이다 — 직물 산업과 광산이 있었다.

명분은 오래된 계승권 주장이었다. 본인도 뒤에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야심과 이익과 명예욕이 나를 움직였다.」

【어떻게 흘렀나】 프랑스·바이에른·에스파냐가 따라 들어왔다. 합스부르크를 나눠 갖자는 것이다.

빈이 위태로웠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헝가리로 갔다.

헝가리 귀족들 앞에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서서 라틴어로 연설했다.

귀족들이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고 전한다. 「우리의 목숨과 피를 여왕 폐하께.」

헝가리 병력이 왔다. 그리고 영국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했다 — 프랑스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전쟁이 유럽 전역과 식민지로 번졌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인도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싸웠다.

8년을 끌었다.

【그래서】 1748년 엑스라샤펠 조약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지켰다. 다만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이 가져갔다.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정과 세제를 뜯어고쳤다. 귀족과 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매기고 상비군을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고 외교를 뒤집었다. 200년 넘게 원수였던 프랑스와 손을 잡았다 — 「외교 혁명」이라 부른다.

1756년 7년 전쟁으로 슐레지엔을 되찾으려 했다. 실패했다.

【남은 것】 프로이센이 강대국이 됐다. 슐레지엔의 자원이 그 바탕이 된다.

그 프로이센이 100여 년 뒤 독일을 통일한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40년을 다스렸다. 아이를 열여섯 낳았고, 그 가운데 막내딸이 마리 앙투아네트다.

의무 교육을 도입하고 고문을 폐지했다.

여자는 통치할 수 없다는 전제로 시작된 전쟁이, 합스부르크에서 가장 유능한 통치자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지도에서 보기: 17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청의 준가르 정벌 7년전쟁 플라시 전투 마이소르 전쟁 미국 독립전쟁 마라타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