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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몽골계 유목 제국 준가르 칸국은 오랫동안 청과 중앙아시아 패권을 다퉜다. 준가르 내부의 왕위 계승 다툼을 틈타 청이 대대적인 원정에 나섰다.
결과청은 정복지의 준가르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 인구의 상당수가 죽거나 도주했다는 기록이 있어 현대 학자들은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기도 한다.
왜슐레지엔을 되찾으려는 오스트리아가 오랜 적 프랑스와 손잡으며 외교 관계가 뒤집혔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이미 충돌하고 있었다.
결과유럽·아메리카·인도에서 동시에 벌어진 사실상 최초의 세계대전. 영국이 프랑스를 밀어내고 해양 패권을 잡았다.
왜회사가 나라와 싸웠다. 클라이브의 병력은 3천, 벵골은 5만이었다.
결과실은 싸움보다 매수였다. 벵골 사령관 미르 자파르가 등을 돌렸다. 이 하루로 회사가 벵골의 징세권을 얻었고, 회사가 나라를 다스리는 구조가 여기서 시작된다.
슐레지엔을 빼앗고 7년전쟁에서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버텼다. 플루트를 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국가의 제1 종복」을 자처했다.
생물 분류 체계를 세우다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이 정신이 표현의 자유의 표어가 됐다.
독일 출신 공주로 시집와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34년 재위 동안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그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됐다.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세 차례 항해로 태평양의 해안선을 그렸다. 감귤로 괴혈병을 막아 긴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가 그린 지도가 곧 식민의 지도가 됐다.
독립을 이끌고 왕이 되기를 거절했다. 두 번의 임기 뒤 스스로 물러났다.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탕평으로 붕당을 눌렀다.
「보이지 않는 손」— 각자가 자기 이익을 좇을 때 사회 전체가 부유해진다. 분업과 자유무역을 설명한 이 책이 자본주의의 경전이 됐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썼으면서 노예 600명을 소유했다.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나라를 두 배로 넓혔다.
인쇄공에서 시작해 피뢰침을 발명하고 프랑스를 독립전쟁의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독립선언과 헌법에 모두 서명한 유일한 인물 중 하나다.
분리 응축기로 증기기관의 효율을 세 배 올렸고 회전 운동으로 바꿔 공장과 기차를 움직였다. 힘의 단위 「와트」가 그의 이름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원이면서 씨름하고 서당에서 우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이 왕에서 사람으로 내려온 순간이다.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가 실제로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적었다.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틀로 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전쟁 · 1757 · 무역 회사가 나라를 갖게 된 날
회사가 나라와 싸웠다. 클라이브의 병력은 3천, 벵골은 5만이었다. 실은 싸움보다 매수였다. 벵골 사령관 미르 자파르가 등을 돌렸다. 이 하루로 회사가 벵골의 징세권을 얻었고, 회사가 나라를 다스리는 구조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1757년 6월 23일이다. 벵골의 플라시 망고 숲이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무역 회사였다. 항구에 상관을 두고 면직물과 초석과 차를 사고팔았다.
벵골은 무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이었다. 태수(나와브) 시라지 웃 다울라가 다스렸다.
【왜 그렇게 됐나】 회사가 캘커타의 요새를 무단으로 강화했다.
태수가 중단을 명했는데 듣지 않았다.
1756년 그가 캘커타를 점령했다. 이때 「블랙홀 사건」이 있었다고 전한다 — 좁은 감방에 영국인 포로를 가둬 다수가 질식사했다는 것이다.
숫자가 크게 과장됐다는 지적이 오래 있었다. 그래도 영국에서 여론을 움직이는 데 쓰였다.
로버트 클라이브가 마드라스에서 병력을 이끌고 왔다.
【어떻게 흘렀나】 병력은 태수가 5만, 클라이브가 3천이었다. 그중 유럽인은 800명이다.
숫자로는 상대가 안 됐다.
그래서 싸우기 전에 이겼다.
클라이브가 태수의 총사령관 미르 자파르를 매수했다. 태수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벵골의 대상인 자갓 세트 가문도 붙었다. 태수가 그들의 돈을 함부로 쓴 것에 불만이 있었다.
전투 당일 비가 왔다. 영국은 대포를 천으로 덮었고 태수 쪽은 화약이 젖었다.
그리고 미르 자파르가 이끄는 부대 대부분이 움직이지 않았다.
실제로 싸운 것은 태수에게 충성한 미르 마단의 소수 부대뿐이었다. 그가 포탄에 죽자 끝났다.
몇 시간 만이었다. 영국 측 사망자가 20명 남짓이다.
시라지 웃 다울라는 달아나다 붙잡혀 살해됐다.
【그래서】 미르 자파르가 태수가 됐다. 그리고 회사에 막대한 돈을 지불했다.
클라이브 개인이 받은 것만 지금 가치로 수백억 원대라는 추정이 있다.
회사가 벵골의 세금 징수권(디와니)을 1765년에 얻었다. 무역 회사가 3천만 명의 세금을 걷게 된 것이다.
【남은 것】 1770년 벵골 대기근이 왔다.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는 추정이 있다.
회사가 세금을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영국 의회에서 문제가 됐다. 클라이브가 소환돼 심문받았다.
「부유한 도시가 내 앞에 있었고, 나는 보물창고 문을 여는 열쇠를 받았다. (…) 여러분, 나는 지금도 내가 절제했다는 것에 놀란다.」
무죄를 받았으나 2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도에서 「미르 자파르」는 지금도 배신자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날이 인도 식민 지배의 시작으로 꼽힌다. 190년 뒤 1947년에 끝난다.
지도에서 보기: 17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7년전쟁 청의 준가르 정벌 마이소르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미국 독립전쟁 마라타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