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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왜역병과 흉작에 관리의 수탈이 겹쳤다. 태평도의 장각이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선다」며 수십만을 모았다.
결과진압을 맡긴 지방관들이 그대로 군벌이 됐다. 조조·유비·손권이 모두 여기서 이름을 얻었고, 후한은 이 난에서 실질적으로 끝났다.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184 · 후한 vs 태평도
역병과 흉작에 관리의 수탈이 겹쳤다. 태평도의 장각이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선다」며 수십만을 모았다. 진압을 맡긴 지방관들이 그대로 군벌이 됐다. 조조·유비·손권이 모두 여기서 이름을 얻었고, 후한은 이 난에서 실질적으로 끝났다.
【그때 그 자리】
2세기 후반 후한은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 황제가 잇달아 즉위하면서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권력을 쥐었다. 166년과 169년 당고의 화로 환관을 비판한 관료와 태학생 수백 명이 제거됐다. 나라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토지는 호족에게 몰렸다. 세금 내는 자영농이 줄고 소작농과 유랑민이 늘었다.
거기에 재해가 겹쳤다. 2세기 후반 30년 사이 큰 역병이 여러 차례 돌았다. 가뭄과 황허 범람도 있었다. 인구가 크게 줄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굶고 병들고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 수백만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장각이 태평도를 폈다.
방법이 단순했다. 병자에게 죄를 뉘우치게 하고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게 했다. 나으면 믿음 덕이고 낫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 했다.
의학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것이 통했다. 10년 사이 신도가 수십만이 됐다.
그는 신도를 36방으로 조직했다. 큰 방은 1만여 명, 작은 방은 6천에서 7천이었다. 각 방에 우두머리를 두었다. 종교 조직이 곧 군사 조직이 됐다.
구호가 이랬다. 창천은 이미 죽었으니 황천이 서야 한다,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창천은 후한을 가리키고 갑자년은 184년이다. 왕조의 명이 다했다는 선언이다. 앞서 상을 무너뜨린 주가 쓴 천명의 논리를, 이번에는 아래에서 꺼내 든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184년 봄 봉기했다. 노란 두건을 머리에 둘러 황건적이라 불렸다. 황색은 오행에서 흙의 색으로, 한의 화덕을 대신한다는 뜻이었다.
여덟 개 주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관청이 불타고 관리가 달아났다.
조정에는 진압할 병력이 없었다. 중앙군이 약했고 재정도 없었다.
그래서 지방에 군사권을 넘겼다. 주의 자사를 주목으로 격상해 군사와 행정을 함께 쥐게 하고, 호족들이 사병을 모아 진압에 나서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장각이 그해 병으로 죽고 주력은 1년 안에 진압됐다. 그런데 진압에 나선 자들이 군대를 그대로 쥐고 있었다.
조조와 유비와 손견이 이 전쟁에서 이름을 얻었다. 원소와 원술도 그렇다.
【그래서】
189년 동탁이 낙양을 장악했다. 이후 군벌들이 서로 싸웠다. 220년 후한이 끝나고 위·촉·오가 갈렸다.
삼국지의 첫 장면이 이 난이다.
【남은 것】
반란 자체는 1년 만에 꺾였지만 그 결과는 400년 왕조의 끝이었다. 진압하려고 만든 장치가 나라를 해체했다.
이 구조는 되풀이된다. 당은 안사의 난을 절도사에게 맡겨 진압하고 그 절도사들에게 무너졌다.
종교가 반란의 언어가 된 것도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원 말의 홍건적, 청 말의 태평천국, 그리고 조선의 동학이 각기 다른 신앙으로 같은 자리에 섰다.
공통점이 있다. 굶주림과 역병과 부패가 겹치고 국가가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할 때, 사람들은 이 세상이 끝나고 새 세상이 온다고 말하는 쪽으로 간다.